“예상은 했지만 훨씬 더 심각하다.”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출생·사망 통계’를 보고 전문가들이 내놓은 평가다. 작년 출산율, 출생아 수 등 지표가 2019년 통계청이 예상한 수치보다도 현저히 낮게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속도면 총인구가 4000만 명대로 가라 앉는 시점도 당초 예상(2044년)보다 10년가량 빨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교사 취업난 심화, 노동력 고령화로 인한 경제 생산성 저하 등 ‘인구 리스크’도 커질 것이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작년 합계출산율 0.84명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8년 0.98명, 2019년 0.92명을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가리킨다. 여성이 평생 아이를 한 명도 안 낳는 나라가 된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세계 198개국 가운데 출산율이 1명도 안 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 출산율은 197위인 푸에르토리코(1.2명)보다도 크게 낮다. 대만도 출산율이 세계적으로 낮은 국가지만 2018년 1.06명에서 2019년 1.2명으로 높아져 한국보다는 양호한 편이다.
저출산 속도가 빨라지자 통계청도 전망치를 크게 손봤다. 2017년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중위 추계 기준)에선 작년 합계출산율을 1.24명으로 제시했지만 2019년 추계 때 0.90명으로 낮춰 잡았다. 문제는 이마저도 낙관적인 전망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뚜껑을 열어 보니 작년 합계출산율은 0.84명에 그쳤다. 0.9명 선까지 뚫린 것이다.
출생아 수 전망도 빗나갔다. 작년 출생아 예상치는 2017년 추계 때 40만9000명이었고, 2019년 추계는 29만2000명이었다. 실제는 27만2000명에 그쳤다.
통계청은 인구 상황이 최악으로 나빠질 때를 가정한 ‘저위 추계’도 해놓았다. 저위 추계에 따르면 작년 합계출산율은 0.81명이다. 현재 상황은 저위 추계에 더 가깝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금 추세대로면 향후 인구 변동은 저위 추계와 비슷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결혼 건수가 급감하고 경제주체들의 위축된 심리가 풀리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결혼 건수는 21만4000건으로 전년보다 10.7% 줄었다. 2019년보다 감소율(7.2%)이 더 커졌다.
통계청 중위 추계상으로는 내국인과 3개월 이상 국내 체류 외국인을 합친 총인구는 2029년 감소하기 시작하고, 2044년(4987만 명)엔 5000만 명 선이 깨진다. 하지만 저위 추계로는 10년 빠른 2034년(4993만 명)에 4000만 명대로 내려온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저출산·고령화 리스크 커질 것”전문가들은 인구가 이렇게 빨리 감소하면 소비 침체, 디플레이션, 인력난 등 부작용이 커지고 저성장이 고착화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일례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이미 2019년(0.4%)에 0%대로 떨어져 디플레이션 현실화 우려가 나왔다. 작년 역시 0.5%에 그쳤다. 인력난의 경우 아직은 취업난이 더 심각해 불거지지 않고 있지만 총인구가 지금보다 1000만 명 이상 감소하면 산업 현장에서 “사람이 부족하다”는 아우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더 큰 문제는 노동력이 고령화돼 경제 생산성이 크게 저하된다는 점”이라며 “청년층은 없고 중장년층만 바글바글한 기업에선 혁신이 발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장기 불황, 소위 ‘잃어버린 20년’ 역시 근본적인 원인은 노동력 고령화에 따른 경제 역동성 저하라는 지적이 많다.
저출산·고령화는 사회보험·국가 재정에도 큰 위협이 된다. 사회보험료와 세금을 내는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드는데 복지 혜택을 받는 노인만 급증하면 재정 적자가 불어나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연금 재정의 경우 2041년 적자로 전환하고 2056년 적립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적자 전환, 적립금 소진 시점이 이보다 빨라질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