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앙정부의 홍콩 책임자가 홍콩 선거제도를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지난해 말 투자협정에 합의한 유럽연합(EU)는 홍콩의 선거제나 사법 독립이 훼손되면 대응하겠다고 나섰다.
23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샤바오룽 샤바오룽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 주임은 전날 홍콩·마카오연구협회가 주최한 비공개 화상회의에서 "선거 제도를 개선해 중국 헌법과 홍콩 기본법에 반하는 법적 공백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중국 정부가 2022년 홍콩 수장인 행정장관 선거를 앞두고 홍콩의 선거제를 손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홍콩의 행정장관 임기는 5년이며 1회 연임할 수 있다. 현 캐리 람 행정장관은 2017년 7월 처음 당선됐다. 행정장관 선거는 간선제로, 홍콩 주민이 선출한 1200명의 선거인단이 투표한다. 이 선거인단은 38개의 직능별 선거위원회에서 선출한 선거인, 의회인 입법회 의원, 홍콩에서 선출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의원, 구의회 의원 등으로 구성된다.
38개 직능별 선거위원회와 전인대·정협 의원은 이미 친중파가 장악하고 있다. 입법회는 지난해 야권 의원들이 모두 사퇴하면서 친중 의원들만 남았다.
중국이 이번에 추진하는 선거제도 개편은 선거인단 중 1200명 중 구의원 몫 117명을 아예 없애는 방안이 될 것이란 예상이다. 행정장관에 투표하는 구의원 선거인단은 승자독식 방식이다. 2019년 구의회 선거에서 범민주진영이 452석 중 388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현 상태대로라면 177명을 모두 범민주진영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샤 주임은 "중국에 반하거나 홍콩을 분열시키려는 자는 누구라도 핵심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홍콩의 선거제는 단순히 다른 나라를 따르거나 복제해서는 안 된다"면서 "홍콩의 실제 상황과 보조를 맞추면서 국가안보를 수호하고 홍콩의 장기 번영과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선거제가 홍콩을 위한 최선의 선거제"라고 강조했다.
EU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22일(현지시간) 홍콩의 선거제나 사법 독립이 훼손될 경우 추가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무장관 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홍콩의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보렐 대표는 지난해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에 대한 EU의 대응책에 두 가지 단계를 추가하는 데 회원국들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EU는 홍콩에 대한 수출통제, 범민주 활동가의 재판 참관, 신규 협상 중단 등을 포함한 홍콩보안법 대응책을 발표했다.
보렐 대표는 "첫 번째 단계는 적절한 기관이나 정당과의 협력 등 홍콩 시민사회에 대한 지원 확대를 위한 조치를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 번째 단계는 홍콩의 사법 독립이 훼손되거나 선거제도가 공격적으로 개혁되는 등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에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조치에 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보렐 대표는 EU가 중국과 투자협정 체결에 합의했지만 이와 별개로 중국에서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EU의 관심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