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첫 산재 청문회' 스스로 걷어찬 정치인

입력 2021-02-23 17:48
수정 2021-02-24 00:10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망신이나 면박을 주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지난 22일 국회 산업재해 청문회를 앞두고 환경노동위원회 여야 간사는 “재해 원인과 실질적인 예방책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다른 의원들도 “기업 혼내주기가 아니라 건설적인 논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9명의 CEO가 참석하는 첫 산재 청문회여서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많았다. 하지만 청문회를 시작한 지 불과 몇 분도 안 돼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

여야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허리 지병을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가 철회한 것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보험 사기꾼’ ‘인성 부족’ ‘지옥의 저승사자’ 등의 표현까지 써가며 공격했다. 청문회 주제와 관계없는 최 회장의 연임 문제까지 물고 늘어졌다. 물론 최 회장의 행동은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하지만 의원들의 잇단 면박과 험한 표현 탓에 정당한 비판마저 묻혀버린 꼴이 됐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국인인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를 향해 “한국 대표는 한국어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황당한 훈수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기업 대표는 무조건 일본어를 해야 한다는 뜻일까.

기업들의 낡은 산재 예방 인프라를 지적하는 ‘송곳 질의’도 일부 나오긴 했다. 하지만 7분이라는 짧은 질의 시간이 주어지는 청문회 특성상 기업인들의 얘기를 충분히 듣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렇다 보니 기업인들로부터 원하는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 호통과 추궁 일색인 질의가 계속됐다. 재계 관계자는 “10시간 동안 호통치면서 면박주기로 일관하는 청문회였다”고 평가했다.

압권은 노웅래 민주당 의원이 최 회장을 향해 제기한 일본 신사참배 의혹이었다. 최 회장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까지 내밀었다. ‘국민기업’ 포스코를 이끌고 있는 최 회장에게 ‘친일 프레임’을 씌우려는 의도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노 의원이 제기한 의혹은 몇 시간 만에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노 의원이 청문회장에서 공개한 사진은 교묘하게 조작된 ‘가짜 사진’이었다. 최 회장 아들 취업특혜 의혹도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노 의원은 최 회장을 향해 “발언에 책임질 수 있느냐”고 수십 차례 따져 물었다. 증인들은 답변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겠다는 선서를 한다. 반면 국회의원은 헌법에 따라 직무상 발언에 대한 면책 특권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최소한 자신이 맡고 있는 국회 미디어언론 상생 태스크포스 단장직에선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그게 그가 제기한 ‘가짜 뉴스’에 책임지는 최소한의 처사가 아닐까 싶다. 노 의원이 아직까지 사과 한 번 없다는 건 또 다른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