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신문사의 논설위원이 쓴 ‘기업한 죄’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서 문득 몇 년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친구가 떠올랐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며칠 전 코스닥시장에 회사를 상장했다고 기뻐하며 저녁 모임을 청했던 친구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한 달쯤 후에 그의 부인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문제는 상속세였다. 사망 당시 상장한 회사의 주가는 6000원 정도였는데, 사망 후 한 달여 만에 2000원으로 떨어졌다. 상속받게 되는 주식과 다른 재산을 모두 팔아도 상속세를 납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평생 기업을 일구고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한 친구였다. 하지만 준비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이유로 자신의 자식이 세금을 내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될 처지에 놓이는 상황을 그 친구는 상상이라도 했을까. 유족들의 선택은 상속 포기 외에는 없을 것이다. 부친이 평생 목숨을 걸고 일궈온 유산을 지키지 못해 죄인 심정으로 살아야 함은 물론, 사장과 함께 열심히 회사를 키워온 임직원들이 처한 상황 역시 암담했을 것이다.
나도 기업인이다. 30대 중반에 창업해서 40년 넘게 회사를 경영했다. 회사는 어느덧 중견기업으로 성장했고, 함께 미래를 개척해 가는 사원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내 나이도 많아져서 이제 곧 경영자로서의 수명은 물론, 인생을 마감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기업승계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없는 규모라 결국 회사 매각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 세법은 현금이나 부동산 등 상속자 소유의 재산을 처분해 상속세를 납부하고 그래도 부족한 경우에만 상속받은 주식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회사를 상속받지 말고 매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세계적 유통기업인 알리바바의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의 경영진 선임에 의결권을 전혀 행사할 수 없다. 창업가 그룹의 기업정신이 유지돼야 한다는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주장에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동의한 것이다. 창업가 정신, 기업가 정신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보호돼야 하고, 이는 기업에 소속된 임직원과 그 가족의 삶을 지켜내는 소중한 기초자산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기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아니라, 기업과 그에 소속된 임직원들의 소중한 삶과 일자리를 지켜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한다. 100년 넘은 장수기업과 ‘히든챔피언’을 양성하는 독일의 합리적인 상속제도, 중소기업의 가업승계를 장려해 노하우를 이어가는 일본의 특례사업승계제도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