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發 '디지털 통화' 시대…환율 급락 부르나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입력 2021-02-21 17:24
수정 2021-02-22 06:55
금융위기 직후 처음 선보인 비트코인 가격이 5만7000달러를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각종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5000달러 밑으로 떨어진 작년 3월에 비해서는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11배 이상 급등했다. 씨티은행은 올해 안에 31만달러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공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처럼 공급의 가격 탄력성이 ‘완전 비탄력적’인 여건에서는 수요가 조금만 증가하더라도 가격 급등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언택트(재택근무), 디지털 콘택트 시대가 앞당겨짐에 따라 비트코인에 대한 수요도 밝은 편이다.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암호화폐(가상화폐)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인식까지 개선됨에 따라 다양한 변화가 일고 있다.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은 자사 상품의 결제수단으로 암호화폐를 고려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를 비롯한 글로벌 금융사도 비트코인을 자산에 포함시키면서 상장지수펀드(ETF) 등 관련된 상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도 빠르게 변하면서 ‘현금 없는 사회’가 닥치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국가의 공식적인 화폐인 법화(法貨·legal tender)를 갖고 있으면 “바보다”라고 조롱할 만큼 ‘현금의 저주’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현금의 저주란 5년 전 케네스 로코프 하버드대 교수가 쓴 《화폐의 종말》에서 처음 주장해 충격을 줬던 용어다.

각국 중앙은행도 변신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기업, 금융회사, 국민의 화폐 생활이 암호화폐로 전개됨에 따라 중앙은행 차원에서 ‘디지털 통화(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도입한 디지털 위안화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고 있는 것도 CBDC 도입을 서두르는 요인이다.

디지털 통화 도입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온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은 입장을 바꿔 올해 안에 디지털 엔화와 디지털 유로화를 도입하기로 방침을 확정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중앙은행의 80%가 도입을 전제로 디지털 통화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제통화제도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 도입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Fed는 민간 권력이 국가 권력까지 넘보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을 불허한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Fed가 디지털 달러 도입을 늦출수록 ‘트리핀 딜레마’ 우려가 현실로 닥쳐오게 된다. 트리핀 딜레마란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화를 계속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의 주장이다. 미국이 더 이상 달러 패권을 누리지 못하면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는 2차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달러화 보유 구속, 즉 ‘달러 함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 경우 보유 달러화가 대거 출회되면서 원·달러 환율도 폭락할 수 있다.

Fed는 디지털 통화 시대가 닥칠 것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대책반을 구성해 준비해 왔다.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별도로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든지 발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 있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페이스북의 리브라를 법정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으나 직접 도입하는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통화 시대를 맞아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또 다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네트워킹 효과와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통화 시대에는 중앙은행이 목표를 ‘물가 안정’에만 둘 수 없다. Fed는 2012년부터 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했다.

한국은행은 3년 전 비트코인 투기 악몽 탓에 디지털 원화 도입을 주저해왔다. 한국은행은 다른 나라보다 뒤진, 잃어버린 시간을 메우기 위해 디지털 통화지표 개발, 통화정책 관할 범위 확대, 통화정책 전달 경로 유효성 점검, 경기 예측력 제고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고용 창출을 목표에 넣을 것인가를 놓고 벌이고 있는 한은법 개정문제를 마무리해 놓아야 한다.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