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자신이 진료하는 환자의 세포와 유전 정보를 몰래 빼내 이용해도 될까. 수만 명이 앓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괜찮은가. 감염병 환자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나. 국가와 기업은 근로자의 건강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김준혁 연세대 치과대 교수가 펴낸 《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는 정답이 없는 여러 질문부터 먼저 던진다. 그 다음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다채롭게 소개하고 이를 사회환경적·역사적 맥락에서 조망한 ‘의료인문학’적 설명을 곁들인다. 예컨대 기형 유전자를 가진 태아를 낙태해도 되는지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 독일의 우생학 사례를 소개하는 식이다.
의료계와 의학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높이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게 저자의 목표다. 여기엔 의료계가 저지른 역사적 실수 대부분이 소통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수련의와 전공의 등 의사 양성 과정에서 상명하복을 강요받으면서 의사들이 지나치게 경직적인 사고 구조를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취지는 좋지만 논리 전개가 다소 빈약한 대목이 눈에 띄는 점은 아쉽다. 20세기 초 미국의 무증상 장티푸스 보균자 메리 맬런에 대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맬런은 요리사로 일하면서 최소 53명에게 장티푸스를 감염시켰고, 세 명의 사망자를 냈다. 미국 방역당국은 장티푸스 유행을 막기 위해 그녀를 26년간 구금했다. 저자는 “맬런이 가난한 이민자 출신 여성이라 지나치게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맬런이 방역당국을 속이고 가명을 써가면서까지 요리사로 일하기를 고집하는 바람에 수많은 추가 희생자가 나왔고, 격리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게 중론이다.
책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도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의료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다. 선명한 주장과 구체적인 논증은 없지만 의료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 의료인들이 의학 윤리와 관련해 어떤 고민을 해왔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고 싶다면 읽어봄 직하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