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바글바글…집합금지 모르는 법원경매 [전형진의 복덕방통신]

입력 2021-02-19 07:00

집을 저렴하게 사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게 바로 법원경매입니다. 시세보다 낮은 선에서 낙찰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죠. 이런 장점으로 수십 대 1의 경쟁률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경매 시스템은 굉장히 후진적인 편입니다. 반드시 법정에 찾아가 입찰해야 하고 개찰도 현장에서 이뤄지죠. 입찰표엔 대상 물건과 입찰가를 손으로 적어야 합니다. 수천만원에서 억대 보증금도 현금으로 넣어야 하죠.

끝이 아닙니다. 이렇게 모인 입찰서류는 사람이 직접 분류합니다. 개찰할 땐 누가 최고가로 입찰했는지조차 일일이 손으로 정리하죠. 자신이 입찰한 사건이 마지막 순서라면 법정에 앉아 수시간은 기다려야 합니다.

집행관이 경매를 진행하는데, 발음이 좋지 않은 분이라면 나를 호명한 게 맞는지 사실 제대로 들리지도 않습니다. 일부 법원은 은행 창구처럼 모니터로 안내를 병행하고 있지만 아닌 곳도 많고요. 이렇게 100여명이 좁은 법정에 모여 혼란스레 뒤섞이는 게 경매시장의 민낯입니다.

이 얘기를 꺼내는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 때문인데요. 수도권에선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매만큼은 예외입니다. 응찰자들이 현장에 모이지 않으면 경매를 진행할 수 없으니까요. 물론 몇 번의 대유행 기간 동안은 입찰기일을 연기하면서 여러 사람이 한 장소에 모이는 상황을 피해왔습니다. 그러나 진행돼야 하는 사건의 총량엔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밀린 경매가 한꺼번에 진행되는 날 집합 인원이 늘어나죠.

진작 전자입찰이 도입됐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순히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줄이는 것을 떠나 수요자들의 편의도 증대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동안 전자입찰 도입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대두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법원경매와 달리 공매엔 전자입찰이 정착돼 있습니다. 경매는 민간의 채무관계가 원인이고 공매는 나라와의 채무관계가 원인이라고 이해하시면 편합니다. 채권자들이 돈을 돌려받기 위해 채무자들의 재산을 처분하는 게 경매라면, 국세나 지방세를 체납한 이들의 재산을 압류한 뒤 환가하는 게 공매의 개념이죠. 그러니까 공매에 이미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니 이를 경매에도 이식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전자입찰의 필요성에 대해 법원은 다소 소극적입니다. 우선 경매는 법원, 공매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집행하기 때문에 주체가 다르다는 것이죠. 민사집행 절차의 특수성 때문에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입찰 방식의 편의성만으로 도입의 근거를 마련하긴 힘들다고 보고 있기도 한데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매수기회가 부여돼야 하는데 현장 입찰제를 폐지하고 전자입찰 방식만 인정하게 되면 고령자 등 정보 소외계층에 대해선 사실상 입찰제한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비용도 문제라고 합니다. 인적, 물적인 자원과 시설을 구비해야 하기 때문이죠. 전자입찰 도입으로 나타날 문제점에 대해 연구할 시간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도입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법원이 조심스러워 하는 이유는 이해됩니다. 그런데 사실 경매시장 참여자들은 이미 대부분의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얻고 있습니다. 경매업체에 월 5만~6만원을 내면서 사건을 검색하고 권리를 분석합니다. 정보 접근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전자입찰의 장벽이 이미 대부분 와해된 셈이란 거죠.

주택청약의 사례도 참고해볼 만합니다. 한국부동산원의 청약홈을 통해 인터넷으로 진행하지만 국민은행 창구를 통한 청약도 가능하죠. 온·오프라인 병행을 통해 수요자들의 편의를 제고하면서 정보 취약계층의 소외도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편의성 측면에선 획기적 개선이 가능합니다. 현장 입찰은 기일입찰, 즉 특정 일시에 현장을 방문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는데요. 예컨대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 서울까지 와서 응찰을 해야 하는 불편이 있죠. 그러나 전자입찰이 도입된다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미리 입찰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보증금을 은행 창구에서 수표로 인출했다가 패찰 후 다시 입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죠. 온라인송금을 통해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론 수천만원의 현금을 지참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조마조마했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경매 전문가들은 “법원이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고 있다”는 지적을 합니다. 결단만 내린다면 불편과 위험을 줄이면서 편의성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정부는 중개업소에서 대면으로 진행하는 부동산 매매·임대차계약조차 전자계약으로 전환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코로나19는 유물 같은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명분이 되기도 합니다. 100여명이 바글바글대던 법정에서 느낀 제 공포를 거름 삼아 합리적인 대안이 마련되길 기대합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