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가리고 뛰어간 정인이 양부…시민들 분노의 발길질 [현장+]

입력 2021-02-17 17:59
수정 2021-02-17 18:32

입양아 정인이를 장기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에 대한 2차 공판이 열린 17일 유기와 방임 혐의 등을 받는 양부 안모씨가 재판을 마친 뒤 시민들 공분 속에 법원을 빠져나갔다. 시민들 온몸으로 막았다…"죽어라" "살인자" 울음 터뜨려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신혁재)는 이날 살인과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모 장모씨와 아동학대·유기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양부 안모씨의 2차 공판기일을 열고 증인신문 절차를 진행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5시까지 이어진 재판이 끝난 뒤 양부는 자신의 차량으로, 양모는 호송차량으로 현장을 벗어났다.

이 과정에서 정인이 양부를 기다리는 시위대는 안씨가 탄 차량을 막아서고 발길질하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안씨는 시민들의 욕설과 취재진의 질문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은 채 황급히 차량을 향해 뛰었다.

수십명의 시민이 차량의 전방위를 막아서면서 안씨의 차량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시민들은 "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소리치며 차량을 양옆으로 흔들기도 했다. 시민들이 연신 안씨가 탄 검은색 차량을 손으로 가격하고 발길질하면서 차량이 한쪽으로 기우뚱 쏠리기도 했다.


경찰이 "비켜주세요. 다칩니다"라고 외쳤지만 이미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사이렌 소리에도 시민들이 움직이지 않자 경찰과 법원 직원들은 안씨의 차량 길을 터주기도 했다.

안씨의 차량이 저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민들은 법원 밖까지 따라가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들은 "네가 사람이냐" "살인자. 죽어라!" "아이한테 어떻게 그런 짓을 하냐"며 울부짖었다.

서울남부지법에 따르면 안씨는 2차 공판에 앞서 법원에 신변보호 요청을 했다. 안씨와 변호인은 지난 9일과 15일 재판부에 신변보호조치를 요청했고, 법원은 이날 안씨에 대한 신변보호를 진행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양부 안씨는 이날 재판 시작 약 한 시간 전인 오전 9시쯤 법정 경위 4명의 신변보호를 받으며 후문을 통해 법원 청사로 들어갔다. 안씨는 지난달 13일 첫 공판에서도 경찰과 법원의 신변보호를 요청, 공판이 끝난 후 법원을 나설 때까지 경찰과 법원 직원들의 신변보호를 받으며 귀가한 바 있다. 양모 장씨는 현재 구속상태다.

영하 10도에 달하는 한파에도 이날 오전부터 법원 앞은 정인이의 양부모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시위대 수십명이 몰렸다. 이들은 '살인자 양모 무조건 사형' '양부를 즉시 구속하라' '정인이가 죽기까지 경찰들은 무엇을 했나'고 적힌 피켓을 들고 "정인아 미안해" "안씨 구속" 구호를 거듭 외쳤다.


오전 9시30분께 양모 장씨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버스가 법원 안으로 들어서자 시위대는 "사형" "구속"을 목놓아 외치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들은 호송버스가 눈에서 벗어나자 정인이 추모곡인 임형주씨의 '천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를 소리높여 부르기도 했다. "살이 가죽으로 변해" "아파도 병원 못 갔다" 증언 나와이날 2차 공판에는 정인이가 다녔던 어린이집의 원장과 교사, 홀트아동복지회 소속 복지사 등 3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인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 A씨는 "정인이가 어린이집에 온 2020년 3월부터 신체 곳곳에서 상처가 발견됐다"고 증언했다. 입양 초기부터 지속적인 폭행과 학대를 받아왔다는 것을 언급한 셈이다.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않은 2개월 만에 정인이가 기아처럼 말랐다는 증언도 있었다.

특히 A씨는 정인이 사망 전날인 지난해 10월 12일 어린이집을 찾은 정인이의 상태에 대해 "그날 정인이는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좋아하는 과자나 장난감을 줘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정인이의 몸은 말랐는데 유독 배만 볼록 나와 있었고, 머리에는 빨간 멍이 든 상처가 있었다. 이유식을 줘도 전혀 먹지 못하고 전부 뱉어냈다"고 진술했다.

홀트아동복지회 직원 B씨는 지속적인 학대로 16개월 영아 정인이를 숨지게 한 양모 장모씨가 정인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인이가 일주일째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장씨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했다"며 "아이가 한 끼만 밥을 못 먹어도 응급실에 데려가는 게 일반적인 부모인데 장씨는 달랐다. '불쌍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불쌍하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 일주일 넘게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정인이는 지난해 1월 양부모에게 입양돼 같은 해 10월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정인이는 사망 당시 췌장이 절단되는 심각한 복부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정인이의 양모 장씨는 당초 아동학대치사 혐의로만 기소됐지만, 지난달 13일 열린 첫 공판에서 살인죄 혐의가 추가됐다. 검찰이 주위적 공소사실 살인 혐의, 예비적 공소사실로는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재판부도 현장에서 이를 허가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