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만의 원자재 ‘슈퍼 사이클’이 재현될 것인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로 사실상 막을 내린 원자재 가격 급등세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12주 연속 휘발유값 상승을 통해 국내 소비자들도 체감할 정도다.
어제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3개월 선물은 장중 한때 t당 8429.5달러에 거래되며 약 9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주석은 8년, 니켈도 6년 반 만에 최고기록을 다시 썼다. 금·은·철광석, 심지어 옥수수 같은 곡물가격 그래프는 작년 2~3월 저점을 찍고 일제히 ‘우상향’하고 있다. 작년 마이너스 가격대까지 떨어졌던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은 미국 텍사스의 기록적 한파로 인한 공급 차질 우려로 배럴당 60달러까지 올랐다. 세계적 금융회사들이 “원자재 시장에서 새로운 ‘슈퍼 사이클’이 시작됐다”고 선언할 만하다.
슈퍼 사이클은 원자재 등 상품(commodity) 가격이 장기적으로 오르는 추세를 뜻하는 것으로, 거의 고유명사가 됐다. 역사적으로는 네 차례 정도 있었다. 1차(1906~1920년), 2차(1932~1947년), 3차(1972~1980년)에 이어 가장 최근의 랠리는 1998~2008년이었다. 이때 다우존스-UBS 상품지수는 약 2배, 원유와 금값은 7배 급등했다.
슈퍼 사이클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은 크게 세 가지다. 경기개선 기대감, 달러화 약세, 인플레이션 흐름이다. 지금도 코로나 극복 기대와 세계 각국의 완화적 통화정책, 경기부양책으로 세계 경기가 회복 중이며, 달러화 약세 지속에 인플레도 초입 단계다. 친환경에너지로 넘어가는 시대적 대전환도 힘을 보탠다. 예를 들어, 해상풍력발전소를 통해 전기 1㎿를 생산하기 위해선 구리 15t이 필요하고, 태양광과 육상풍력발전소의 경우 5t의 구리가 있어야 한다.
슈퍼 사이클을 팬데믹에 의해 촉발된 단기적 ‘보복소비’나 인플레에 따른 ‘화폐타락’의 결과로 보는 분석도 있지만,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오히려 금융의 적극적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원자재 ETF(상장지수펀드) 같은 금융상품의 등장이다. 2000년대 이전엔 원자재와 증시의 상관관계가 적었지만, 이런 금융상품의 발달로 상관계수가 0.8(1에 가까우면 밀접하게 관련)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원자재 가격은 ‘수요·달러·금융의 3중주’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슈퍼 사이클은 투자자들에겐 피아노 3중주만큼이나 아름답겠지만 기업과 소비자에겐 악몽이 될 수 있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