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비정상' 가족은 없다

입력 2021-02-16 17:23
수정 2021-02-17 00:07
“미혼모들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나와 아이가 비정상이 아님을 증명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부재는 반쪽짜리 사랑으로 치부되고 엄마들은 아이를 불행하게 하는 이기적인 부모로 평가됩니다.”

안소희 미혼모협회 인트리 사무국장이 16일 국회 앞에서 열린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현 건강가정기본법에서는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로 정의한다. 또 ‘모든 국민은 혼인과 출산의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법률혼으로 인정된 가족과 혈연이나 입양에 기초한 가족만 법적 가족으로 인정한 규정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법안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혼인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안 사무국장 가족이 ‘비정상’일까. 현실은 바뀌고 있다. 우선 ‘정상적인’ 가족으로 인식되던 ‘부부와 미혼 자녀’ 형태의 가구 비중은 2010년 전체 가구의 37.0%에서 2019년 29.8%로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 1인 가구는 23.9%에서 30.2%로 뛰었다. 전통적 혼인 비율도 점점 줄고 있다. 혼인 건수는 32만6000건에서 23만9000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한부모가족은 2018년 기준 154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7.7%를 차지한다.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여가부의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7%가 혼인·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서적 유대가 있는 친밀한 관계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39.9%나 됐다.

점점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일부 사람은 부모(父母)와 자녀(子女)로 이뤄진 핵가족이 ‘정상’이라고 생각해 막말을 일삼는다.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씨가 자발적 비혼 출산을 했을 때 ‘아빠 없이 자라는 아이는 불안정하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그들은 대다수 아동학대가 친부모가정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엔 눈을 감는다. 이 같은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막기 위해서라도 법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이상한 정상가족》 저자에게 격려 편지를 보냈다. 해당 도서는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한 한국의 가족주의와 결혼제도 안에서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로 간주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한부모·동거·비혼·1인 가구 등 수많은 ‘다른 형태’의 가정이 ‘비정상’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