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농업의 디지털 전환

입력 2021-02-16 17:18
수정 2021-02-17 00:03
최첨단 디지털산업과 벤처 창업의 본거지 실리콘밸리로 유명한 캘리포니아는 미국 농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미국 채소, 과일 생산의 3분의 1을 담당하며 농업으로 매년 500억달러(약 56조원), 영농가구당 연 6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황금의 땅’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가 농사에 적합한 기후를 타고난 것은 아니다. 지리적 특성상 사막기후 지대로 연간 강수량이 300~600㎜밖에 되지 않고 건기인 여름에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다. 겨울철 시에라네바다산맥에 쌓인 눈이 녹은 물을 저수지에 가두고 인공수로를 통해 가져와 농업용수와 식수로 활용한다.

물이 부족하다 보니 늘어나는 도시민과 영농인 그리고 환경단체 사이에 물사용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한다. 더구나 2010년 이후 가뭄이 이어져 주(州) 급수의 45%를 지하수에 의존하면서 지반 침하 현상과 반복적 산불 발생 등 심각한 재앙마저 초래되고 있다.

IBM연구소는 사물인터넷(IoT) 센서 전문기업 스위트센스, 비영리단체 프레시워터트러스트, 콜로라도대와 함께 물 부족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IoT, 블록체인,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물 사용을 최소화하고, 지하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먼저 IoT 센서가 실시간 지하수 취수 데이터를 위성으로 전송하고, 위성은 별도로 수집한 기후 데이터와 지하수 데이터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정보를 클라우드를 통해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물이 필요한 농가와 할당된 물이 필요하지 않은 농가가 블록체인상 스마트계약을 맺어 지하수 거래를 할 수 있게 했다.

무분별하게 물을 퍼올리는 대신 취수 가능 범위에서 필요한 만큼 조절해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포도나 오렌지 농장에서는 강수량, 대기 중 습도, 토양 등의 상태를 센서로 감지하고 빅데이터 분석으로 꼭 필요한 양의 물을 관개시설을 통해 정확하게 작물에 공급하는 방안을 시험 운영하고 있다. 미국 최대 와이너리인 E&J 갤로에서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물 사용량을 25% 줄이면서 필요한 당도의 포도를 수확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도 수년간 보령댐, 소양강댐과 농업용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극심한 가뭄을 경험했다. 1차 산업인 농업에도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기술을 입히는 일이 필요하다. 한국 농업이 아시아에서 디지털 전환을 선도하면 내수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안전한 먹거리 수요를 가진 배후지를 대상으로 캘리포니아를 능가하는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이 정보기술(IT)과 제조 역량에 더해 깨끗한 물과 그린에너지를 기반으로 최고 품질의 농산물을 디지털 영농으로 생산해 수출하는 우리의 미래를 가슴 벅차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