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초저출산이라는 깊은 늪에 빠졌다. 합계출산율이 0.8명대로 추락했다. 사상 처음 주민등록인구가 감소했다. 작년 출생자 수는 27만 명 선으로 떨어졌다.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상회하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
정부는 작년 말 4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을 내놨다. 2세 미만 아이에게 영아수당을 주고 출산 시 산모에게 일시급을 지급하는 등 2021~2025년에 196조원을 투입한다. 여전히 육아와 양육 중심의 대책이다. 2006년 이후 200조원 이상을 투입했지만 출산율은 1.2명에서 0.8명으로 급락했다. 인구 감소는 우리나라가 수축 사회로 본격 진입했다는 엄중한 경고음이다. 인구절벽 문제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기혼자 위주의 저출산 해법에서 과감히 탈피할 필요가 있다. 청년층의 결혼을 장려하는 대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유배우자의 출산율은 2명을 웃돈다. 일단 결혼하면 정상적인 출산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비혼이나 만혼(晩婚)이 저출산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혼인 건수는 2012년 이후 8년 연속 내리막길이다. 2019년에는 23만9200건으로 전년 대비 7.2% 감소했다.
일본의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혼 건수가 1970년 103만 건에서 2019년 58만3000건으로 감소했다. 여성의 경제활동 기회 확대, 비정규직 증가, 초혼 연령 상승으로 비혼과 만혼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출산율이 2012년 1.41명에서 2019년 1.36명으로 떨어졌다.
가파른 1인 가구 비율 상승은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2016년 35%에서 2019년 39.2%로 높아졌다. 작년 사상 최초로 900만 가구를 돌파했다. 1인 가구 증가는 반(反)출산주의 흐름을 반영한다는 시각도 있다. 출산을 필수적인 행위로 받아들이지 않는 주체적 선택일 수 있다.
일자리와 주거가 출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결혼 5년차 부부의 비출산 비율이 20%에 달한다. 최근 20~30대 인구가 급증하는 김포시, 화성시, 평택시는 첨단산업 시설과 대규모 주거단지가 활발히 조성되는 지역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도요타자동차 본사가 있는 일본 아이치현의 출산율이 높은 것은 안정된 일자리와 주거 여건, 지방정부의 출산지원책이라는 삼박자가 잘 갖춰졌기 때문이다.
‘사유리 현상’은 비혼 출산이 새로운 사회 관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0명 중 3명꼴로 비혼 출산을 받아들인다. 혼외 출생자 비율은 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바닥 수준이다. 젊은 층은 비연애, 비결혼, 비출산을 당연한 사회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아도 같이 살 수 있다’는 응답 비율이 2012년 45.9%에서 2018년 56.4%로 높아졌다. 다인종,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외국인이 220만 명을 넘는 사회가 됐다. 차세대 재생력을 높이려면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사회가 구축돼야 한다.
저출산 해법으로 여성 평등에 주목해야 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관건이다. 나탈리아 카넴 유엔인구기금 총재는 “저출산 해결의 돌파구는 여성들이 임신·출산의 자기결정권을 누릴 권리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이 직면하는 유리천장은 여전히 높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19년 성(性)격차지수 국제비교에서 우리나라는 153개국 가운데 108위다. 한국은행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아지면 잠재성장률 하락을 연평균 0.3~0.4%포인트 완화해 준다.
육아휴직 비율은 여성 73%, 남성 24%에 그치고 있다. 북유럽 국가처럼 남성의 의무 육아휴직제 도입을 검토할 가치가 있다. 자영업자와 프리랜서에 대한 혜택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여성 고용률은 51.6%에 불과하다. 저임금 여성 근로자 비율은 35.3%로 OECD 평균(20%)과 격차가 크다. 경력단절 여성이 150만 명이나 된다. 여성의 사회 경제적 역할이 커져야 ‘인구절벽 쓰나미’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출산 대책에 대한민국의 장래가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