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러시아 정부에 실종된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유해 발굴 및 송환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소련이 6·25전쟁 당시 피해자들이 귀국하지 못하게 강제 억류했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한 유족들의 진정서에 대한 대응이다. 유엔이 러시아 정부에 유해 송환에 대한 책임까지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한국과 러시아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유엔 강제실종워킹그룹(WGEID)은 “러시아 연방 및 지방 정부가 15명의 사할린 한인들의 유해 매장 장소를 찾고, 이들의 유해를 특정하고, 한국의 유족들에게 송환할 것을 촉구한다”며 지난해 9월 러시아 정부에 보낸 공문 내용을 최근 공개했다. 해당 내용이 포함된 보고서는 이어 “(러시아 정부가) 군대 기록을 포함한 기록물은 실종자 유족을 포함한 일반에 공개돼 완전히 접근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엔이 러시아 정부를 향해 유해 발굴과 송환에 나서라고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WGEID는 러시아 정부에 23명 중 10명의 피해자들의 사례를 우려를 담은 질의서를 전달했다고 지난해 12월 공개한 바 있다. 당시에도 WGEID가 실종 사실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년간의 심의 끝에 러시아 정부에 질의서를 보낸 것 자체만으로 유엔이 소련에 의한 피해자들의 강제실종을 확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유엔이 러시아 정부를 향해 이들의 유해 송환은 물론 관련 군 기록까지 공개하라고 요구하면서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싣게 됐다.
피해자들은 일제강점기 때 당시 일본령이던 남(南)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됐다가 6·25전쟁 발발과 함께 실종됐다. 사할린 강제동원 억류피해자 한국잔류유족회는 2019년 유엔에 진정서를 보내고 이들의 실종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구했다. 유족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부분 본국으로 송환된 일본인들과 달리 한인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는 소련 당국에 의해 강제 억류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소련이 북한의 남침을 비밀리에 승인한 뒤 6.25전쟁 발발 직후 수만 명에 달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귀국할 경우 북한 측에 불리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유엔이 사실상 러시아 정부에 피해자 유해 송환의 책임을 부과한 가운데 한·러 양국 정부가 관련 대응에 나설지 주목된다. 정부가 조속한 유해 송환을 위해 적극적인 외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이미 정부는 그동안 실종자 유족들의 DNA 채취도 진행해온 상황”이라며 “러시아도 유해 송환을 반대할 이유가 없는 만큼 우리 정부가 외교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조속한 송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