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 마시다" 논란 1년만에 속도내는 한·미 방위비 협상[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입력 2021-02-14 10:00
수정 2021-02-14 12:09

“김칫국 마시다”

지난해 4월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이 큰 논란을 일으킵니다. ‘김칫국 마시다’라는 속담의 뜻을 영어로 설명한 이 사진은 공교롭게도 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 협상을 두고 ‘잠정 타결’ 됐다는 한국 정부 입장에 대해 미국이 정면 반박한 날 올라왔습니다. 당시 주한미군 측은 “사령관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익힌 표현을 올린 것일 뿐이라 한·미 현안과 연결지으면 곤란하다”고 말했지만 한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추측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의도와 무관하게 결국 한국 정부는 ‘김칫국을 마신’ 상황에 직면합니다. 정은보 한국 방위비분담 협상대사는 지난해 3월31일 브리핑에서 “상당한 의견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조만간 최종 타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협상 잠정 타결’, ‘유효기간 5년으로 연장’, ‘총액 1조원 플러스 알파’ 등의 꽤나 구체적인 소식들이 흘러 나옵니다. 당시 청와대가 이같은 보도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정하지 않아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하지만 이틀 뒤 미국 국무부가 “협상은 아직 안 끝났다”며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놓으며 분위기는 급반전됩니다. 며칠 뒤 로이터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전년대비 13% 인상’ 안을 최종 거부했다고 보도합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측 제안 거부 결정은 지난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의 협의를 거쳐 이뤄진 것이고 전·현직 당국자들이 사석에서도 수일 내에 새로운 합의가 이뤄질 희망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는 내용까지 전합니다. 결국 협상은 해를 넘긴 지금까지 타결되지 못했습니다. 바이든 "트럼프 500% 인상안은 韓 갈취"
1년 넘게 교착 상태에 빠져있던 협상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미국 CNN은 10일(현지시간) 미국 내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해 한국이 최선이라고 제시한 약 13% 인상선에서 합의되고, 유효기간이 1년이 아니라 수년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협상 장기화로 난항을 겪은 한국에게는 희망적인 소식입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나온 눈에 띄는 변화입니다.

CNN이 보도한 잠정 합의는 지난 5일 회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양측은 11차 SMA 체결을 위한 8차 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했습니다. 이 회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양국 간 첫 SMA 공식 회의로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첫 통화에서 양국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지 하루 만에 열렸습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양측이 그 동안 계속된 이견 해소 및 상호 수용 가능한 합의 도출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했다”며 “가능한 조속한 시일 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번영의 핵심축(linchpin)으로서 한미동맹과 연합방위태세 상화에 기여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도 지난 4일 국회 답변에서 “SM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시기가 올 것”이라며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도) SMA와 관련해 양측 대표 간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고, 조속히 타결하자는 의지가 확인됐다”고 소개했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국을 향해 “안보에 무임승차한다”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현지 언론들은 2019년 3월 백악관에서 ‘주둔비+50%’ 안이 나왔다고 보도합니다. 동맹국들이 미군 주둔비용 전액과 함께 50%의 가산금까지 내야 한다는 안입니다. 이를 적용하면 한국 측의 분담금이 기존의 약 5배가 될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결국 같은해 9월 시작된 11차 SMA에서 미국은 기존 한국 측 분담금의 5배 수준인 50억달러(약 5조5300억원)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반 년이 넘는 협상 끝에 한국 측이 제시한 ‘13% 인상’이라는 역대 최고 수준 인상안에 대해 양국 협상단은 잠정 합의를 이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직접 거부권을 행사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대폭 인상 요구를 강하게 비판해왔습니다. 미국 민주당은 지난해 7월 정강 초안에서 “한반도 핵위기 와중에 동맹의 방위비 분담금을 극적으로 인상하기 위해 우리의 동맹인 한국을 ‘갈취’하려고 노력했다”고 명시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연합뉴스에 기고문을 보내 “대통령으로서 우리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무모한 협박으로 한국을 갈취하기보다 동아시아와 그 이상의 지역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한국과 함께 설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4% 인상'은 버리고 역대 최대 13% 인상?
방위비 분담금 액수만큼 중요한 것이 협정의 유효기한입니다. 협정을 갱신할 때마다 분담금이 인상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협정을 자주 체결하지 않는 것이 한국으로서는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다행인 것은 미국 하원에서 지난해 11월 새로 출범할 행정부의 ‘코드’에 맞춰 SMA가 ‘상호 동의할 수 있는 다년(多年)계약’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는 점입니다. ‘상호 동의’와 ‘다년계약’은 트럼프 행정부의 SMA 협상 전략과는 정면 배치됩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도무지 ‘상호 동의’가 불가능한 5배 인상안을 주장한 것은 물론, SMA의 유효기간도 ‘1년’을 고집했습니다. 1~7차 협정 때 2~3년,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체결된 8·9차 협정 때는 5년이던 SMA 유효기간은 트럼프 정부 때 1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매년 협정을 갱신할 때마다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겠다는 속셈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타결 임박’ 이야기가 나와 한국이 반색하고 있는 ‘13% 인상안’도 역대 최대폭의 인상이라는 점입니다. 한국이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을 처음 ‘분담’하기 시작한 1991년 이래 모두 10차례의 SMA가 체결되었습니다. 분담금 인상률이 가장 높았던 것은 1993년이었습니다. 당시 29.8%가 올랐지만 전년도 분담금이 1.8억달러(약 2000억원)로 현재 분담금의 5분의1도 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분담금 액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은 트럼프 행정부 당시인 2019년도 10차 SMA였습니다. 총 787억 원으로 전년 분담금의 8.2%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이때 한국의 분담금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만약 올해 13% 인상된다면 최고 인상 기록은 깨지게 됩니다.


‘13% 인상’으로 협상이 타결되면 우리 정부가 2019년 11차 SMA 협상이 처음 시작됐을 때 제시한 안에 비해 훨씬 큰 분담금을 부담하게 됩니다. 2019년 협상 초기 당시 일각에서는 정부가 미국에 4% 인상안을 제시했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2019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회의에서 미국은 “한국에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며 일방적으로 협상 중단을 선언하고 떠났습니다. 이때 미국이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간 것이 한국 측이 4% 인상안을 내밀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4%’는 2014~2018년 적용됐던 9차 SMA 합의에 나왔던 수치입니다. 이 협정에서 양국은 첫해 9200억원 분담금을 시작으로 매년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인상하되 과도한 인상을 막기 위해 최대 4%를 넘지 않도록 합의했습니다. 협상 초기 정부가 4% 인상안을 냈다는 설도 이 기준에 기초해 4% 인상안을 제시했다는 분석에 기초합니다. 물론 당시 한국 측이 처음 제시한 인상안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동결이나 소폭 인상안을 고수했다고 밝힌 정부가 협상 초기부터 ‘13% 인상’을 내밀었을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다시 말해 만일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상이 한국이 ‘최대치’로 제시한 13% 인상안에서 타결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벼랑끝 전술’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게 됩니다.

동맹을 중시한다는 바이든 정부는 그동안의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정책을 ‘갈취’라고까지 표현하며 비판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양보하면서 오히려 바이든 행정부가 안보협의체 ‘쿼드(Quad)’ 등 반중(反中) 전선에 한국 참여를 약속받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임기 만료 전 남북한 관계 진전의 성과를 내기 위해 미국의 협조가 절실한 문재인 정부에 비해 바이든 행정부가 양보해야할 ‘유인’은 적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한·미 관계는 물론 남북 관계와 한·중 관계까지 얽혀있는 이 고차방정식을 풀어내는 데에서 우리 외교의 역량이 드러날 전망입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