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인간 욕망의 덧없음 그리고 싶었다"

입력 2021-02-14 10:57
수정 2021-02-14 10:58
화가 안창홍(68)이 다시 한번 틀을 깼다. 이번에는 화폭의 한계를 벗었다. 서울 청담동 호리아트스페이스와 아이프라운지에서 15일부터 열리는 디지털펜화전 '유령패션'에서다.



그는 작품을 통해 매번 세상을 도발했다. 1980년대 초반 가족의 허상을 고발한 '가족사진' 연작, 2009년 소시민들의 누드를 사실적으로 그린 '베드 카우치' 연작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에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노트20 울트라와 S펜이 작가의 새로운 캔버스와 붓이 됐다. "최신 스마트폰에 거의 컴퓨터같은 기능이 다 있는데 전화나 메시지용으로만 쓰기는 아까웠어요. 예술은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잖아요? 세상을 보고 소통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싶었고 그때 제 손에 있던 것이 스마트폰이었죠."



그가 주목한 것은 패션이었다.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패션은 자본주의의 핵심이자 인간의 노출심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람들의 패션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순간 육신은 빠져나오고 옷만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요."

그는 지난해부터 인터넷상에 떠도는 패션 화보를 수집했다. 앱으로 그 사진을 지우고 덧붙여 그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사람은 사라지고 옷과 신발만 덩그라니 남은 자리, 작가의 터치가 더해지면서 빈 자리는 욕망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디지털로 작업하는 과정에서 생긴 거친 터치는 새로운 손맛을 선사한다. 안창홍식 '디지털 손맛'인 셈이다. 피처럼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원본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터치로 뒤덮힌 작품들에선 '역시 안창홍'이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디지털 액자를 통해 원본 사진이 작품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선보이기도 한다.



안창홍의 시그니처인 '화가의 심장'은 이번 전시에서도 선보인다. 이번 심장은 순백색이다. "화가의 심장은 모든 작품의 원천입니다. 하얀색은 어떤 색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색이지요. 화가는 어떤 색이든 자유롭게 담아내고 표현할 수있어야 한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전시공간 한켠에 마련된 '그림명상실'에서 편하게 주저앉아 새하얀 '화가의 심장'을 마주하고 명상에 잠길 수있다.

이번에 발표한 작품 50여점 가운데 일부는 실제 캔버스에 회화로도 작업할 예정이다. 안창홍 특유의 강렬한 질감과 터치를 실제 캔버스로도 만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안창홍은 "저의 작업을 통해 디지털 시대에 거부감이 있는 아날로그 세대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13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