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는 드릴게.”
2013년 개봉한 영화 ‘신세계’의 명대사입니다. 그러니까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방망이 마사지를 해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정부가 발표한 공급대책도 이런 뉘앙스였다는 게 개발 후보지역 주민들의 이야기입니다. 협박 같았다는 것이죠.
‘2·4 대책’의 골자는 공공이 재개발이나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을 주도하겠다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수용해서라도 말이죠. 물론 수용 절차는 택지를 개발할 때완 조금 다릅니다. 신도시를 만들 땐 정부가 필요에 따라 지구지정을 하고 이후 강제수용이 진행됩니다. 이번 대책에서 나온 ‘공공주택 복합사업’이나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은 이를 신청하는 주민들이 있을 경우 나머지를 수용하는 형태입니다.
동의율 요건이 있긴 한데요. 두 가지 사업 모두 주민(토지등소유자 또는 조합원) 66.7%가 동의해야 합니다. 일반 재건축·재개발은 조합설립 과정에서 75%의 동의율이 필요하죠. 큰 차이 없어 보이지만 대부분 추진위원회(50%) 단계에서 조합설립에 필요한 동의서 몇 장을 더 걷지 못해 사업이 엎어집니다.
공공사업에 동의하지 않는 나머지 33.3%의 주민들은 어떻게 될까요. 이 가운데는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이들도 있고, 다른 사업 방식을 원하는 주민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열차가 출발하면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목적지까지 함께해야 하는 강제조합원 제도인 것이죠.
민간 정비사업도 비슷하지 않느냐고요? 많이 다릅니다. 민간이 추진하는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 이탈하고 싶을 경우 시세대로 집을 팔면 그만입니다. 사업 단계가 많이 진척됐거나 조합원자격 승계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면 높은 값도 받을 수 있죠.
공공사업은 중도하차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팔 수 없게 막은 것은 아닙니다. 살 수 없게 막았을 뿐이죠.
제가 대책이 발표된 지난 4일 이후 빌라를 한 채 샀다고 가정해보죠. 그런데 재수없게 해당 지역에서 공공주택 복합사업이나 공공 직접시행 정비사업이 추진됐습니다. 이 경우 제겐 새 아파트 우선공급권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단어도 참 웃긴데요. ‘우선’공급권이 없다고 해서 ‘일반’공급권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현금청산이란 의미입니다.
만약 원래부터 현지에 살던 주민이 집을 팔고 이사를 가려 한다면 어떨까요. 해당 주택을 사더라도 새 아파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살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원소유주든 승계인이든 누군가 한 사람이 폭탄을 떠안고 현금청산 결말을 맞아야 하는 것이죠. 참, 현금청산은 감정가격이 기준이기 때문에 시세보다 짭니다.
그래서 2·4 대책이 나온 직후 법조계와 정비업계에선 “이게 말이 되냐”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말이 된다”는 게 정부의 논리입니다.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며 연일 해명자료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이번 대책은 ‘땅을 갖다 바치면 내쫓지는 않겠다’는 뜻인데요. 반대로 표현하면 ‘싫으면 청산해서 나가라’는 뜻이기도 하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탈출구는 없습니다. 설마… 이렇게 주택거래를 아예 막아버려 집값을 잡으려는 ‘큰 그림’인데 우리가 수용과 청산 문제에 매몰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