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낙담과 방황의 시기에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는 다짐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혼돈의 시대일수록 초심의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기본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언제나 고객은 중심이다. 시류에 따라 표면적 양상은 변하지만 저류에 흐르는 고객은 불변이기 때문이다. 다만 고객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식은 기술과 여건에 따라 변화한다. 디지털 전환에서도 고객 관점의 변화가 출발점이다.
전 세계의 정보기관들은 인간을 통한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 기술을 활용한 테킨트(TECHINT·technology intelligence), 공개 정보를 취합하는 오신트(OSINT·open source intelligence)의 세 가지 채널로 정보를 수집한다. 정보요원들이 활약하는 전통적 방식인 휴민트는 생생하고 직접적이지만 품질 차이가 크다. 정찰위성 등 첨단장비로 영상정보, 신호정보, 계측정보를 수집하는 테킨트는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공개된 정보에 기반하는 오신트는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각광받고 있다. 사이버 세계에 산재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면 유의미한 정보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제임스 울시 전 미국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모든 정보의 95%는 공개된 출처에서, 나머지 5%만이 비밀 출처에서 나온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정보 획득 경로를 기업의 고객이해 측면에서 접근하면 시사점이 있다. 휴민트는 영업직원, 고객평가단, 설문조사 등에 기반한 전통적 방법이다. 테킨트는 위치, 이동, 검색, 구매 등 다양한 데이터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분석한다. 오신트는 고객 후기, 파워블로거, 인플루언서 등 공개된 정보에 기반한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휴민트를 주축으로 테킨트가 보완하고 오신트는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온라인 비중이 커진 디지털 시대에는 휴민트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테킨트와 오신트가 부각된다. 인터넷 사용자들이 방문하는 홈페이지, 포털, SNS, 온라인쇼핑몰 등에 남기는 디지털 흔적을 정밀하게 추적해 개개인의 특성과 취향까지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의 맥락에서 고객을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은 휴민트-테킨트-오신트의 구조를 재정립하고 연결해 통합하는 방식이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개별 기업 단위에서 테킨트-오신트 방식의 고객정보 수집은 고비용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려워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휴민트 정보를 위주로 고객에 대한 가설적 추론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일상생활에 보급된 다양한 디바이스와 오픈 플랫폼을 통해 정확한 데이터 수집이 가능하다.
모든 기업은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당초 의도와 달리 고객과 괴리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접근 방식이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이미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데 기존 오프라인의 협소한 관점에서 고객을 이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특히 전통적인 아날로그 사업자들은 사이버 온라인 공간의 고객행동 데이터를 수집할 기반이 미흡하고 그나마 온·오프라인 데이터를 통합해 분석할 역량은 더욱 부족해 고객과의 거리가 멀어진다. 또한 특정 경로의 데이터에 함몰돼 여타 경로에서 입수하는 데이터와 보완되지 않을 경우에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기업들이 고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휴민트-테킨트-오신트라는 데이터 3종 세트가 보완적으로 통합되고 지속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의 분리되고 단절돼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고객 개념과 접근 방식에서 탈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다음은 아날로그-디지털, 온라인-오프라인, 휴민트-테킨트-오신트를 관통하는 개방적이고 연결된 고객정보 인프라의 구축이다. 이는 기존 아날로그 사업자일수록 디지털 전환의 여정에서 초심으로 돌아가는 실질적인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