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물의 주인은 수천 년 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그건 그렇게 썼던 게 아니야’라고 명예훼손 소송을 걸 리가 없죠. 고고학이 제멋대로 해석돼 정치와 외교 분야에서 악용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고고학자인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사진)의 말이다. 그는 신간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에서 “문명과 야만, 중심과 변방, 자아와 타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최신 고고학 자료를 동원해 고대사의 쟁점들을 짚었다. 책 제목은 라틴어로 ‘미지의 땅’이란 뜻. 이민족과 괴물들이 사는 이질적인 곳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돼 왔다.
강 교수는 “고고학은 19세기 제국주의와 함께 성장한 학문”이라며 “유럽 강대국들이 ‘식민지는 미개하다’는 편견을 전제로 연구했던 게 시초”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들었다. 이 영화의 실존 모델인 랭던 워너는 실크로드의 불교 미술품들을 파괴하고 약탈한 주범으로 오늘날 지탄받고 있다. 서구 박물관은 식민지에서 빼앗아 온 문화재로 가득하다.
“세계 4대 문명의 관점으로 고대사 교육을 받는 것 역시 19세기 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당시 강대국들이 마련한 잣대여서다. “인류 역사의 99.7%는 기록이 시작되기 전의 역사거나 문자기록 문화가 없던 지역의 역사”라고 강 교수는 강조했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건 유물 자료가 아전인수격 해석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이다. 일본과 중국은 정치 이데올로기와 영토 확장의 정당성 부여를 위해 고고학을 동원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서기 4~6세기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웠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나서 자국 고고학자를 대거 동원해 유라시아 일대 유적 발굴 작업에 투입하고 있다.
국내 재야 학계와 일부 지식층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유사역사학도 그는 비판했다. 그는 “‘우리 역사는 크고 위대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객관적 시각을 잃어버린 극단적인 예”라며 “이를 바로잡지 못한 기존 역사학계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유사역사학 연구자 중 진짜 고고학 전문가는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일반인은 그들의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리니 따르게 되죠. 악순환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요.”
강 교수는 “고고학은 결코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자신이 위대하다고 허풍 떠는 데 이용되는 학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고학은 현재 시점에서 유물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인류의 보편성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고학은 현재 관점에서 과거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아주 미래지향적인 학문입니다. 동일한 유물에 대해 50년 전 연구 내용과 현재의 해석이 전혀 다른 경우도 많거든요. 과거를 알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 현재의 시점, 미래에 대한 전망이 결합된 분야입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