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희에게 결코 나의 왕국을 내어주지 않았다. (…) 내가 그저 가련하고, 병약하고, 힘없고, 멸시받는 늙은이가 됐을 뿐.”(셰익스피어 《리어왕》 3막2장)
‘왕국’을 잃은 리어왕은 거센 비바람을 향해 자신의 뺨을 찢으라는 절규로 권력을 잃은 절망을 토로했다. 정치의 세계에서든, 기업 현장에서든 권력자는 ‘왕좌’에서 제 발로 내려오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자신이 이룩한 세계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서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선 전혀 다른 풍경이 전개된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떠나는 유명 창업자가 적지 않다. 구글을 세운 동갑내기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46세 때인 201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45세(2000년)에 마이크로소프트 CEO에서 사임한 빌 게이츠는 59세 때엔 이사회 의장직마저 내놨다.
명성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서 후배에게 길을 터주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2014년 CEO를 그만둔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와 얼마 전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손정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처럼 IT업계에서 ‘왕좌의 교체’가 자발적이고 순조로운 것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기술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고, 창업자들이 새로운 분야에서 ‘인생 2막’의 도전에 나서길 바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런 일련의 ‘거물 은퇴자’ 리스트에 아마존 회장 겸 CEO 제프 베이조스(57)가 추가됐다. 베이조스는 올 3분기에 27년간 유지해온 아마존 CEO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직만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업가치가 1조7000억달러(약 1895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업체를 일군 그의 ‘하산(step down)’ 소식이 미치는 파장이 작지 않다.
베이조스는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에너지가 넘친다”며 “아마존이 지금 최고로 혁신적인 상황이어서 물러난다”고 강조했다. ‘변화와 혁신의 상징’답게 혁신을 위해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사퇴의 변이 인상적이다. 우주사업, 디지털 언론 등 새로운 분야에서 계속 도전할 것도 암시했다. 마지막까지 ‘혁신’과 ‘도전’을 강조한 것은 월가라는 편한 길을 버리고 시애틀의 자택 차고로 뛰어들었고, 전당포와 성인영화관이 모인 골목에서 세계 최대 온라인 서점을 꿈꿨던 그에게 무척 어울리는 고별사가 아닐까 싶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