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의 교육과 세상] IB 국공립학교 탄생, 변화가 시작됐다

입력 2021-02-03 17:27
수정 2021-05-10 18:32
한국 최초의 IB(국제바칼로레아) 국공립학교가 지난달 21일 대구에서 탄생했다. 경북대 사범대학 부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그 주인공이다. 세계 최초의 한국어 IB 학교다. 지식을 집어넣는 교육만 평가하는 기존 교육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의 생각을 꺼내는 교육으로 수업과 평가 패러다임을 바꾸자고 주장하며 IB의 공교육 시범 도입을 처음 제안한 《대한민국의 시험》(이혜정, 2017년) 출간 이후 4년 만이다.

IB는 1968년부터 스위스의 비영리 민간기구에서 해외 주재원 자녀들의 질 높은 교육을 위해 개발된 교육 프로그램 및 대입시험이다. IB 학교 인증은 교사들의 변화 시간을 고려해 2년 내외가 걸린다. 초·중학교가 먼저 인증 완료됐고 연내에 대구의 3개 고등학교, 제주의 1개 고등학교가 인증이 완료돼 내년 3월부터 고등학교 IB 수업이 시작될 예정이다. 대구는 현재 15개교가 IB 인증이 완료됐거나 과정 중이고, 추가로 50개교가 IB 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두 학교의 IB 교육 인증 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코로나 상황으로 정규 연수가 연이어 취소돼 온라인 연수를 받거나 IB 본부의 연수강사를 초빙해 교내 연수를 진행했다. 컨설팅 방문과 인증심사 방문 동안 IB 본부에서 파견된 심사위원은 모든 교사의 수업을 참관하고 인터뷰했다. 학생과 학부모 수십 명을 인터뷰하면서 IB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확인하고 미흡한 부분은 조언도 해줬다.

한 가지 옐로카드를 받은 부분은 영어(외국어)를 학생 수준과 무관하게 학년별로 수업하는 점이었다. 우리 교육은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수업과 평가를 하는 것이 공정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IB는 외국어의 경우 수준과 무관하게 같은 수업과 동일한 시험 문제로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불공정이라고 인식한다. 공정에 대한 철학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수업의 가장 큰 변화는 개별 피드백이다. 기존 수업에서 피드백은 의무 요소가 아니지만, IB에서 개별 피드백은 필수불가결한 의무 요소다. 코로나19 때문에 원격 교육을 해야 할 때도 수업의 실시간·비실시간 여부는 관건이 아니었다. 피드백을 많이 주는 ‘양방향’ 수업인지가 중요했다. 온라인으로도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니 학습 결손이 없었다. 코로나 학습 격차도 당연히 없었다. 아이들의 가장 큰 변화는 교과서 펴고 암기하는 학생이 없다는 것,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 역량이 압도적으로 커졌다는 것, 엎드려 자는 학생이 없다는 것,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모든 과제와 시험이 직접 말하고 쓰는 ‘생각을 꺼내는’ 형태이다 보니 논술형·발표형 평가에 익숙해졌고 각자 스스로의 관심사를 찾으려 노력한다. 학생 주도 수업이니 학력 저하 걱정도 없다.

최윤성 경북대사대부초 교감과 전미숙 사대부중 교사는 IB가 교육과정이 아니라 수업 철학과 평가 방식이 다른 프레임워크를 제공하기 때문에, 창의융합 인재를 양성하려는 현 2015 국가교육과정의 과정중심평가에 매우 효과적인 실천 방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존 수업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만 중요했는데, IB 수업에서는 ‘왜’ 가르쳐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 반신반의하던 교사들도 연수를 받고 수업에 적용해 보면서 점차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이번 쾌거는 학비가 비싼 국제학교나 특목고·자사고인 경기외고·충남삼성고에서 영어로 운영돼 귀족 엘리트 교육으로 인식되던 IB 교육이 ‘한국어’로 ‘무상 공교육’에 도입된 첫 번째 사례로 의미가 있다. 경제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학습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아직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원 행정업무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수능 최저등급 요구 없는 수시 전형으로 지원하게 될 IB 학생들의 2024년도 대입이 기대된다. 교육부 신년 업무계획에 미래 교육을 위한 정책이 보이지 않는데,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할 교육 모델이 지방에서 태동하고 있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