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넘긴 르노삼성 임단협, 파업·직장폐쇄 재현 우려

입력 2021-02-02 11:36
수정 2021-02-02 11:37

지난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타결하지 못한 르노삼성 노사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수익성을 개선하라는 모기업의 지시로 희망퇴직이 진행되는 가운데 노조가 파업 절차를 밟고 있어서다. 지역사회에서는 과거와 같은 강대강 대치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르노삼성 노조는 2일까지 조합원 대상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진행한다. 노조는 지난해 10월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쟁의조정 중지 결정을 받았기에 조합원 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하면 즉시 파업이 가능해진다. 노조는 "이제는 행동해야 할 때"라며 "사측에게 제대로 한 판 붙어 빼앗긴 것들을 되찾자"고 찬성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노조 "제대로 한 판 붙자"…파업 찬성 독려노조는 사측이 임단협 제시안을 내놓지 않으며 협상을 미루고 희망퇴직을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사측이 앞서 제시한 임금개편안을 지난달 13일 3차 본교섭에서 거부하고 기본급 인상을 요구했는데 사측이 추가 제시안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희망퇴직을 받으면서 계약직 채용을 진행했다며 "우리를 몰아내고 비정규직으로 채우려는 야욕"이라고 비난했다. 노조는 △기본급 7만1687원(4.69%) 인상 △일시금 700만원 지급 △노조 발전기금 12억원 출연 △휴가비·성과급(PS) 인상 등을 요구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르노삼성은 지난달 14일 진행된 전세계 르노 CEO들 회동 이후에야 임단협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화상회의로 열린 이 회동에서는 모기업 르노그룹의 새 경영 전략 '르놀루션'이 발표됐다.

르놀루션에는 기존 시장점유율과 판매량 중심에서 탈피해 수익성을 극대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오는 2023년까지 25억유로(약 3조4000억원), 2025년까지 50억유로(약 6조7000억원)의 비용 감축도 결의됐다. 모기업 차원에서 긴축경영에 나선 것이다.

모기업 질책에 궁지 몰린 르노삼성…신차 요구엔 '면박'르놀루션에 따라 르노삼성의 입지는 더욱 쪼그라들었다. 르노삼성은 전세계 르노 CEO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질책을 받았다. 그간 부산 공장의 경쟁지로 꼽혀온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은 "기존 경쟁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쟁지인 스페인 공장이 앞서가는 동안 르노삼성 부산 공장은 뒷걸음만 친 셈이다.

이 자리에서는 신차 배정을 요구한 노조도 면박을 받았다. 박종규 노조위원장은 루카 데 메오 르노그룹 CEO에게 SM6와 QM6 후속물량 등 신차 배정을 요청했지만, 데 메오 CEO는 "르노삼성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3~4개 정도 교체 모델이 흥미롭겠지만 한국에서 생산할지는 모르겠다"고 사실상 거절했다.

크리스토프 부떼 르노삼성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28일 "스페인 공장의 시간당 임금은 부산 공장의 62% 수준이고 생산 비용도 1100달러 싸다"며 "르노삼성은 큰 도전에 직면했다"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르노삼성은 전체 임원의 40%를 줄이고 남은 임원의 임금 20%를 삭감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직영 서비스점 테크노스테이션(T/S) 매각에도 나섰다. 그럼에도 모기업에 '신차를 줄 수 없을 정도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장'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결국 르놀루션 발표로 르노삼성은 전직원 희망퇴직과 기본급 동결 등 긴축재정에 나서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신차 없는 올해는 더 어려워…지역사회에선 우려 목소리올해 시장 상황도 우려되는 요인이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내수 9만5939대, 수출 2만227대 등 총 11만6166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34.5% 감소한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는 출시가 예정된 신차가 없어 내수 판매 감소도 우려된다.

XM3 수출이 예정된 상태지만 계약 물량을 보장받은 것이 아니기에 잘해야 연 5만대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르노삼성은 지난해 700억원 규모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데,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 못하면 올해도 적자를 낼 가능성이 높다.

임단협을 둘러싼 노사간의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노조는 고용 보장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 준비에 나섰고 사측은 모기업으로부터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질책과 함께 신차 배정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다. 르노삼성 노사는 2018년과 2019년 임단협을 두고도 전면파업과 직장폐쇄 등 강대강 대치를 벌인 바 있기에 지난해 임단협을 두고도 같은 상황이 재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부산 지역 시민단체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부경연)는 "르노삼성이 어려움을 겪는 부산 지역경제와 협력사에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일자리를 줄이거나 타 분야로 전업하는 등 협력업체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시기에 비용 절감 등 르노삼성의 고강도 자구책은 필수적이고 당연하다. 이런 시기에 파업은 안 된다. 부산 시민이 용납할 수 없다"고 노조의 파업 행보에 경고를 보냈다.

부경연은 사측에도 "어쩔 수 없이 희망퇴직을 시행했다고 밝혔지만 자발적 퇴직이 아니라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며 "사내 유보금이 소진돼 쌍용차와 같은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자구책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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