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스무살에 상경했다. '플랜 비'(Plan B)는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프로필 사진을 영화 제작사에 돌렸고, 단역을 시작으로 조금씩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갔다. OCN '경이로운 소문'은 배우 이홍내의 존재를 대중에게 제대로 알린 첫 작품이었다. 10년여의 무명의 시간을 지나 왔지만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전혀 없었다"며 "평생 배우를 하고 싶다는 마음 뿐"이라던 이홍내에게 그래서 '경이로운 소문'은 끝내서 "공허하고 아쉬운 작품"이었다.
'경이로운 소문'은 악귀 사냥꾼 '카운터'들이 국숫집 직원으로 위장해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귀를 물리치는 히어로물이다. 지청신은 악귀 중의 악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죽지도 않는 4단계까지 등극한 캐릭터다. '경이로운 소문' 시즌1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등장만으로 오싹함을 불러일으킬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영화, 드라마에서 조·단역으로 활동했던 이홍내는 '경이로운 소문'에서 그동안 쌓아왔던 내공을 아낌없이 내뿜었다. 그러면서도 "전 사실 겁이 많다"며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변할 때, 제가 나온 장면을 보고 저도 무서웠다"고 털어 놓아 웃음을 자아냈다. "조병규 추천으로 오디션 기회"
'경이로운 소문' 출연 기회는 우연처럼 찾아왔다. 소속사를 통해 오디션을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것. 알고보니 '경이로운 소문'의 타이틀롤 소문 역을 맡은 배우 조병규가 제작진에 "지청신 역으로 이홍내라는 배우가 있는데 어떻겠냐?"고 제안했었다고. 이홍내와 조병규는 웹드라마 '독고 리와인드'라는 함께 한 인연이 있다.
"(조병규와) '독고 리와인드'에서 크게 붙는 장면은 없었어요. 리딩에서 2번 본 게 실제로 마주친 전부였어요. 그때도 저 혼자 '좋은 배우'라고 생각은 했어요. 이후 조병규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을 보면서, 저는 그를 알고 있었지만 그분도 저를 기억할 줄 몰랐어요. 연락처도 몰랐어요. 이번에 다시 만났어도 저에게 '제가 형을 추천했어요'라는 말도 안하더라고요. 그게 정말 고마웠어요. 제가 만약 감독님에게 그렇게 추천했다면 '내 덕분인 거 알지?'라고 소문내고 다녔을 텐데, 부담감을 느낄까 봐 안 그런 거 같더라고요. 역시 병규 '님'이에요."(웃음)
조병규의 소개가 있었지만, 지청신이란 캐릭터에 낙점될 수 있었던 건 이홍내라는 배우가 가진 매력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 "전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다"고 겸손하게 표현했지만, 현장에서 수년간 다진 이홍내의 정형화되지 않은 모습이 자기 연민과 폭력성을 동시에 지닌 지청신의 에너제틱한 모습과 맞아떨어진 것.
"지청신 대본을 받고 1인2역을 준비했어요. '지킬앤하이드' 느낌으로요. '네 년 그 얼굴, 그 몸 기필고 찾아 찢어죽여 주겠다'는 대사였는데, 제가 제안의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는 방식으로요. 불안하고, 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오디션을 본 당일 바로 연락을 받았어요." 겁 많은 이홍내가 '악신' 지청신이 되기까지
출연이 확정된 후 외모부터 모든 것을 바꿨다. 오디션을 볼 때만 하더라도 길었던 머리를 원작 웹툰과 마찬가지로 짧은 삭발 머리로 잘랐고, 전작을 위해 감량했던 체중도 10kg 정도 증량했다. 다른 출연진들과 함께 액션 스쿨을 다리며 지청신에 대한 싱크로율을 높였다.
고난도 운동을 하면서 살을 찌우는 건 빼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아무리 먹어도 체력 소모가 커서 살이 빠지기 때문. 이홍내는 "고칼로리 식단으로 하루에 5끼씩 먹으며 벌크업을 했다"며 "간식도 빼놓지 않고, 계속 먹었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재밌고 유머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홍내였다. 지청신의 악랄함을 끄집어내기 위해 "나쁜 상황을 생각하며, 그 감정을 잊지 않으려 했다"며 남다른 고충을 전하기도 했다.
만발의 준비를 마친 후에도 "불안감은 여전했다"고. 한 여름에 검은색 기모 후드를 입고 촬영한 첫 장면은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털어 놓았다.
"첫 등장부터 카운터 3명과 맞붙는데, 그들에게 밀리지 않는 에너지를 보여줘야 했어요. 조금이라도 에너지가 밀리는 걸 보여주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했죠. 기괴하고, 강렬하고, 사이코틱한 에너지를 어떻게 살릴까 고민이 많았어요."
힘들게 준비했지만 "제 연기 점수는 20점"이라고 평할 만큼 겸손했고, 시청자들의 평가도 담대하게 받아들였다. 극 후반부 지청신의 서사가 등장한 것을 두고 시청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것에 대해서도 이홍내는 "시청자들이 봐주시는 게 정답"이라며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갖는 건 재미가 없다"며 "이런 관심을 받는 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다.
"시청자 분들껜 모든 게 감사해요. 그래도 스스로에겐 아직 아쉬운 게 있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그때 조금만 더 해볼걸', '타협했나', '부족했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후회는 없지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진 않아요." "시즌2, 응원합니다!"
'경이로운 소문' 시즌1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했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채 소멸한 지청신이다. 시즌2가 스핀오픈 형태로 나오지 않는 이상, 지청신은 등장하지 못한다.
이미 일찌감치 시즌2 제작이 확정된 상황, 이홍내는 "지청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악귀가 등장해 카운터와 대결을 펼쳤으면 한다"며 "지청신은 보내주고 싶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드라마가 사랑받으면서 "고향에 내려와 일자리를 구하라"는 부모님도 든든한 조력자로 바뀌었고, 인터넷 설치를 해주러 온 기사도 "지청신이 아니냐"며 알아볼 정도가 됐다. SNS를 하지 않지만 주변의 반응을 보면서 달라진 걸 느낀다고.
그럼에도 이홍내는 들뜨거나, '경이로운 소문'에 과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2009년 카메라 앞에 처음 선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최선을 다했다"는 이홍내는 "이전에 단역으로 출연하고, 통편집 되고, 어깨나 뒷모습만 나왔던 작품들도 저의 소중한 작품들이고,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경이로운 소문'을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이로운 소문'이 끝나니 그때의 시간들이 많이 생각이 나요. 시청률이 높고, 잘된 작품을 마무리 해 특별하다기 보단, 이 역시 열심히 끝낸 저의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캐릭터의 비중과 상관없이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했어요. 이번 작품이 특히 사랑받았다고, 그래서 더 좋았다고 한다면 과거의 제가 상처받을 거 같아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