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명절기간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택배박스 대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인으로 원지·박스업계의 ‘제 식구 감싸기’를 지적했다. 문제 해결을 두고 공정거래위원회·중소기업벤처부까지 나설 것으로 전망되며 골판지업계의 오랜 관행에 변화가 생길지에 관심이 쏠린다.
1일 골판지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4일 세종에서 택배박스 대란과 관련한 관계부처·업계 회의를 연다. 회의에는 국무총리실, 산업부,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해 제지연합회, 골판지조합, 박스조합 등이 참석한다. 제지·골판지업계가 산업부 이외의 정부부처와 회의를 여는 것은 처음이다.
회의에서는 골판지업계의 ‘수직적 공급’ 문제가 핵심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업계의 노력에 따라 박스의 원료가 되는 원지의 국내 출하량을 회복했으나 자사 계열사 위주로 원지를 공급하는 관행 때문에 중소·영세 박스업체가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했다. 최근의 대란이 특정 박스업체 위주로 원지가 공급되는 것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다.
골판지업계도 이같은 문제를 인지했다. 지난달 28일 골판지조합(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은 ‘골판지파동 극복을 위한 상생협력 재촉구’라는 제목의 공문을 회원사에게 보내 최근의 박스 대란이 업계의 ‘공급 쏠림현상’에 있다고 꼬집었다. 조합은 “상당수 골판지 원지기업이 외부공급을 제한한 채 자사 계열사 위주의 공급을 하고 있으며 이는 심각한 거래상 지위남용”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박스의 70%는 일명 ‘일관업계’로 불리는 원지·원단·박스 기업라인의 수직적 생산 과정에서 나온다. 박스의 1차 원료인 골판지 원지를 생산한 기업이 자사의 계열 원단기업에 보내면, 이 기업들이 2차 원료인 골판지 원단을 만든 후 역시 자신의 계열 박스기업에 보내 최종적으로 상자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국내에는 약 20곳의 원지 기업과 100여곳의 원단 기업, 2000~2500곳의 박스 기업이 존재한다. 규모가 작거나 거래역사가 짧은 박스 기업은 원지·원단을 얻기 힘든 구조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박스생산 불균형이 일어나 현재의 공급대란이 불거졌다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
다만 일관업계 문제가 워낙 오래된 관행인 만큼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골판지업계 관계자는 “일관업계 비중이 갈수록 높아질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 정부에서 나선다 해도 바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골판지조합 관계자도 “월 5000t 규모로 조합 차원에서 원지를 공동구매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 중이지만 근본적으로 일관업계 관행이 깨지지 않는다면 해결이 어렵다”고 했다.
정부는 실태조사 등의 강도 높은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박스 대란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골판지 업계에 수차례 자정할 것을 권고했지만 최근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이런 식의 상황이 이어지면 공정위·중기부에 이첩해 공정거래·상생문제 차원에서 해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