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지난 30일 숙환으로 타계하면서 ‘영(永)’ 자 돌림의 범현대가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막을 내렸다. KCC 측은 “정 명예회장이 최근 건강 상태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으며, 이날 가족들이 모여 임종을 지켰다”고 전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1958년 창업 이후 지난 60여 년 동안 창업주로서 경영현장을 지킨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2000년 명예회장으로 세 아들에게 경영 실무를 넘기고 난 뒤에도 지난해 말 병세가 악화되기 전까지 서울 서초동 KCC 사무실로 매일 출근해 업무를 챙겼다. 60여 년 현장 지킨 ‘리틀 정주영’
1936년 강원 통천에서 출생한 정 명예회장은 맏형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가장 애틋하게 여긴 동생이었다. 큰형은 아버지 자리를 대신하는 집안 어른으로서 막내를 살뜰히 챙겼다. 형제들 중 외모와 말투, 걸음걸이, 기질 등이 정주영 명예회장과 가장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리기도 했다.
KCC 역사의 출발은 1958년 8월 ‘금강 스레트공업주식회사’였다. 전쟁 이후 복구가 절실했지만 자재가 부족했던 당시 지붕 위를 덮는 슬레이트를 생산한 것이 시초다. 정 명예회장은 이후 건축자재를 중심으로 회사를 확장시켜나갔다. 1974년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사업에 진출했으며, 1989년에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에는 (주)금강과 고려화학(주)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주)으로 새롭게 출범시켰다. 이후 2005년 금강고려화학(주)을 (주)KCC로 사명을 변경해 건자재에서 실리콘, 첨단소재에 이르는 글로벌 첨단소재 화학기업으로 키워냈다. 현재 KCC그룹은 자산기준(2020년 11조원) 재계 32위로 성장했다.
KCC는 지난 60여 년 동안 건축 및 산업자재 국산화와 산업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입에 의존하던 도료, 유리, 실리콘 등을 자체 개발한 것은 물론 첨단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 1987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봉지재(EMC) 양산화에도 성공했다. 반도체용 접착제를 개발하고 상업화에 성공하는 등 반도체 재료 국산화에 힘을 보탰다.
1996년에는 수용성 자동차 도료에 대한 독자기술을 확보했다. 2003년부터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실리콘 원료(모노머)를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한국은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에 이어 실리콘 제조기술을 보유한 일곱 번째 국가가 됐다.
고인은 일생에 걸쳐 국내 20개, 국외 10개 등 총 30개의 공장을 지었다. 직접 도면 위에 연필로 줄을 그으며 토목기사이자 건축기사, 엔지니어로서 공장 개발을 꼼꼼히 챙긴 것으로 유명하다. 큰형이 지어준 이름 ‘금강’정 명예회장이 창업에 나선 건 약관의 나이에 불과한 22세 때다. 정주영 회장이 경영하는 현대건설이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었지만 막냇동생은 큰형의 품을 벗어나 자신의 사업을 펼치겠다는 뜻을 강하게 밝혔다. 정주영 회장은 “뜻이 그렇다면 네 사업을 해봐라. 기왕이면 국가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업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1958년 설립한 ‘금강 스레트공업주식회사’의 이름도 정주영 명예회장이 손수 지어줬다. 가장 단단한 보석인 금강석과 고향에서 보던 금강산에서 따온 ‘금강(金剛)’이다. ‘야무지고 빼어난 기업으로 키워보라’는 큰형의 뜻을 정상영 회장은 깊이 새겼다. ‘안으로 튼튼한 회사로 키우고, 밖으로는 산업보국(産業報國)을 실천한다’는 창업정신은 지금까지 KCC그룹으로 이어져왔다.
고인은 범현대가 큰 어른으로서 가족의 대소사를 직접 챙겼다. 현대가 1세대 6남 1녀 가운데 정주영 명예회장이 2001년 타계한 데 이어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2005년),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2005년),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2006년), 정희영 여사(2015년) 등이 세상을 떠나면서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