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 '벼락거지' 만든 집값 대책…당장 거래세부터 낮춰야"

입력 2021-01-31 17:49
수정 2021-02-01 01:22

“공장을 파괴하는 데 돈을 써도 국내총생산(GDP)은 증가합니다. 숫자에 집착해선 안 됩니다. 정부는 생산 역량을 높이는 데 재정을 써야 합니다.”(정진욱 한국경제학회 차기 회장)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부가 의미 없는 공급 대책을 펴고 있습니다.”(이인호 한국경제학회 회장)

현직 및 차기 경제학회장이 한목소리로 정부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 회장은 2월 5일부터 이 회장 뒤를 이어 한국경제학회를 1년간 이끌 예정이다. “정부가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제대로 된 정책을 펴지 못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번 대담은 지난 29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이상열 경제부 차장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사회=올해 한국 경제가 얼마나 빨리 회복할까.

▷이인호 회장=백신 보급 속도에 따라 회복의 속도와 폭이 결정될 것이다. 작년 -1%로 역성장을 했고 올해는 성장률이 3%를 기록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3% 성장률은 작년 역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다. 회복의 질(質)은 좋지 않다. 고용의 질이 나빠졌고, 자산시장 과열에 따른 양극화로 사회구성원들의 자괴감은 커지고 있다.

▷정진욱 회장=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면서 3%에 닿을 듯하다. 기획재정부가 성장률을 맞추려고 애를 쓰는데 그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공장을 파괴하려고 돈을 쓰고, 바다에 현금을 뿌려도 모두 GDP로 잡힌다. 숫자보다는 생산성 향상 등 경제의 내실 다지기에 힘써야 한다.

▷사회=실물경제와 달리 주식·부동산시장은 과열 양상을 보인다.

▷이 회장=자산가격이 실물경제와 동떨어진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저금리에 따라 빚으로 주식을 사들인 사례가 늘었다. 문제는 반대매매(증권사가 돈을 빌린 사람들의 담보주식 가치가 일정 비율 이하로 내려갈 때 보유 주식을 팔아 대출금을 회수하는 것) 흐름이 본격화될 때다. 반대매매가 이어지면서 자산가격이 조정을 받는 사이클이 올 수 있다.

▷정 회장=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에 이어 증시로 향하고 있다. 자산 거품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경우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극심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20년 동안 겪었다. 정부가 실물경제와 자산시장 가격의 괴리감을 줄일 수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 데 투자하는 것이다. 생산성이 가장 떨어지는 교육 부문, 지역 불균형 부문에 재정을 쏟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집값이 급등하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대안은 무엇인가.

▷정 회장=집값 급등으로 ‘벼락거지’라는 말이 퍼졌다. 엉뚱한 정책으로 허송세월한 정부가 벼락부자와 벼락거지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나라를 만들었다. 집 없는 젊은 세대가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반드시 집값을 잡아야 한다. 거래세율 인하가 가장 효율적 대안이다. 거래세율이 낮아지면 빚이 많은 사람의 부동산 매물이 나올 것이다.

▷이 회장=이 정부는 초반에 자본이익을 환수하는 데 초점을 두고 부동산 정책을 설계했다. 최근 공급 정책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아무도 원하지 않는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문제다. 의미 없는 공급 대책을 펴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서울 강남 아파트처럼 ‘좋은 집’이다. 전국 집값의 상승세를 주도하는 품질 좋은 아파트 공급을 유도해야 한다. 정부가 수급 여건을 조절해 집값을 낮춘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망각해버렸다.

▷사회=자영업자 손실보상 법제화 논란도 불거졌다.

▷정 회장=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발생한 손실을 정확하게 산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래 장사가 안되던 것인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것인지 가늠할 길이 없다.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에게 장기 저금리 대출 형태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회장=자영업자 손실은 전염병 등 불가항력적 원인으로 발생했다. 자연재해와 비슷하다. 정부는 홍수와 장마 등으로 재산손해를 본 국민에게 보상하는 제도를 운용 중이다. 자연재해 보상안을 근간으로 삼아 자영업자 피해를 보상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 자영업자 손실을 메우라는 일각의 주장은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 장기매매를 하라’는 이야기와 같다.

▷사회=재정건전성 우려도 커졌다.

▷이 회장=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0%를 웃도는 일본과 한국의 경제 환경은 판이하다. 한국 정부가 일본처럼 국채를 찍어내면 시장에서 소화하기 어렵고 그 파장도 클 것이다.

▷정 회장=국가부채는 양(量)보다 질이 중요하다. 도박 빚을 갚으려면 허리가 휜다. 하지만 공장을 지으려고 빚을 냈다면 빚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공장을 돌려 빚을 갚으면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같은 ‘공장’에 투자해야 한다. 생산성이 높은 분야에 재정을 쏟아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빚을 갚을 기반도 함께 마련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통화정책 정상화는 언제쯤 시작하는 게 바람직한가.

▷이 회장=조금씩 고민해야 할 때다. 물론 한국은행이 당장 기준금리를 올리는 등 출구전략에 나설 때는 아니다. 불어난 가계부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한다.

▷정 회장=당분간 기준금리를 못 올릴 상황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는 만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한다.

■정진욱 차기회장은…

△1960년 출생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플로리다대 경제학 박사
△미국 에모리대 조교수
△한국연구재단 설립위원회 위원
△한국계량경제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 51대 회장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 이인호 회장은…

△1957년 출생
△서울대 경제학부 졸업
△미국 UCLA 경제학 박사
△영국 사우샘프턴대 경제학과 조·부교수
△한국산업조직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 50대 회장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정리=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