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전류를 정확히 측정하고 교정하는 것은 각종 산업 현장에서 필수 요소로 꼽힌다. 상당한 전력을 소모하는 반도체 공정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농도 측정, 암 치료에 사용하는 방사선량 측정에도 미세전류 측정이 활용된다.
미세전류의 표준을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는 장치가 국내 기술로 개발·검증됐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은 1㎁(나노암페어, 1㎁=10의 -9제곱) 이하 미세전류 표준을 구현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저항·전압 표준 장치와 세계 최초로 비교 검증하는 데 성공했다고 29일 밝혔다.
현재의 전류 표준은 저항과 전압에 비해 정확성이 100배 이하로 떨어진다. 저항값과 전압값은 각각의 고유 양자 상태에서 발현하는 저항과 전압에 의해 주어지는 데 비해 전류는 아직 이에 대응하는 소자가 개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KRISS를 포함한 세계 각국 표준기관은 전압표준기와 저항표준기를 이용해 전류 표준을 ‘추산’해왔다. 전류의 세기가 전압에 비례하고 저항에 반비례한다는 ‘옴의 법칙’을 통해서다.
그러나 전류 표준을 구현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흐르는 전자의 수를 직접 세는 것이다. 2018년 이후 새롭게 정의된 1A(암페어)의 사전적 정의 ‘초당 6.24150907×10의 18제곱 개의 전자 흐름’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다.
KRISS 전기자기표준그룹 연구팀은 이처럼 전자의 수를 측정해 전류 단위를 정의할 수 있는 ‘단전자 펌프 소자’를 2015년 개발했다. 이를 꾸준히 고도화해 양자측정표준 삼각체계를 이용한 방법으로 정확성을 검증하는 데 최근 성공했다. 양자측정표준 삼각체계는 새롭게 정의된 암페어를 실현하는 방식과 기존 암페어를 구현하는 방식의 일치 여부를 검증하는 방법이다
KRISS 연구팀이 개발한 단전자 펌프 소자는 물을 계속해서 끌어올리는 양수기처럼 작동한다. 전자를 담는 양자 우물을 이용해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전자를 하나씩 퍼 담아 내보내는 방식으로 전류를 만들어낸다. 이 장치는 1초에 약 1억 개의 전자가 흘러갈 때, 약 40개의 측정 오류가 날 정도로 정확도가 높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영국, 독일 표준기관에 필적하는 기술력이라는 게 KRISS 측의 설명이다.
개발된 기술은 반도체 공정 등 산업 현장에서 폭넓게 활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장비를 가동하지 않아도 일정량의 전류가 새어나간다. 전력 누설이 계속되면 반도체 소자에 열이 발생해 불량이 나올 수 있다. 전력 낭비가 커지는 것도 문제다. 미세먼지와 방사능 측정에도 전류가 활용된다. 측정기기에 분진이 붙거나 방사능 물질이 들어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미세한 전류 신호를 감지하는 식이다. 개발 기술을 활용하면 현장에서 쓰이는 전력 측정기기를 정확하게 교정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미세전류 측정 장치의 정확성을 국내 기술로 검증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연구를 이끈 배명호 KRISS 책임연구원은 “그동안 소자를 검증하려면 영국 등 선진국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 등 의존도가 컸다”며 “소자 검증을 위해 영국 등 먼 곳으로 가야 했던 동남아시아 국가 등에 기술을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