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금융사기로 불리는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이 1심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한국경제신문이 2019년 7월 라임 사태 의혹을 처음 제기한 지 1년4개월 만이다. 라임 사태는 피해액 1조6000억원, 피해자 4000명이 넘는 대형 금융사건이다. 1조6000억원대 금융 사기에 중형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29일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라임 사태의 주된 책임이 있다”며 이 전 부사장에게 징역 15년에 벌금 40억원, 14억4000만원 상당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이 전 부사장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수재·사기), 자본시장법 위반(미공개 정보 이용) 등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이 전 부사장과 함께 기소된 원종준 전 라임 대표에게는 징역 3년에 벌금 3억원을, 이모 전 라임 마케팅본부장에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사장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라임은 펀드 자금과 신한금융투자의 총수익스와프(TRS) 대출자금으로 2017년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그룹(IIG) 펀드 등 다섯 개의 해외무역금융 펀드에 투자했다. 이 중 하나인 IIG 펀드에서 부실이 발생했지만, 이 전 부사장은 이를 숨긴 채 펀드 판매를 이어간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부는 “IIG 펀드 부실을 알고도 펀드를 모자구조로 구조화해 17개 펀드에 국한됐던 손해를 34개 펀드로 확산시켜 부실을 은폐했다”며 “환매가 어려울 정도로 펀드가 부실화한 뒤에도 투자자에게 이를 알리지 않은 채 펀드를 계속 판매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부사장은 라임이 투자한 회사에 손해가 생기자 이 업체의 부실 채권을 다른 펀드 돈으로 인수하는 일명 ‘돌려막기’를 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그가 이런 방식으로 파티게임즈 등 4개사의 전환사채(CB) 900억원을 고가에 인수해 라임에 손해를 끼쳤다고 봤다. 그는 라임 자금 350억원을 코스닥 상장사인 리드에 투자해준 대가로 명품 시계와 가방, CB 매수청구권 등 14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수재)도 받고 있다. 라임이 투자한 회사(지투하이소닉)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미리 주식을 팔아 11억원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도 있다. “윤리의식 찾아보기 힘들다”이 전 부사장은 라임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맡아 펀드의 설계 운용을 총괄했다. 그는 2019년 11월 코스닥 상장사 리드에서 발생한 횡령 사건에 관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잠적했다가 지난해 4월 서울 성북구의 한 빌라에서 체포됐다. 그는 “펀드 부실 여부를 초기에 몰랐고, 펀드 피해 책임은 펀드 판매사에 있다”며 혐의를 부인해왔다.
재판부는 “투자자가 원금조차 되돌려받지 못해 개인적·사회적 피해가 매우 크지만, 피고인은 업무 수행에 잘못이 없다고 하는 등 금융투자업자로서 지켜야 할 윤리의식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펀드 불완전 판매에 관여한 피의자들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해외 펀드의 부실을 알리지 않고 투자자에게 480억원의 펀드를 판매한 혐의를 받는 임모 전 신한금융투자 PBS사업본부장은 지난해 9월 징역 8년에 벌금 3억원을 선고받았다. 장모 전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은 라임 펀드의 손실 가능성을 숨긴 채 470명에게 2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판매한 혐의로 지난달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았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