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구진이 핵이 생성되는 과정을 세계에서 최초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 연구단 박정원 연구위원(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원자가 모여 결정을 이루는 '핵 생성'(nucleation) 과정을 처음으로 관찰해 냈다고 29일 밝혔다.
기초과학연구원 연구팀과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이원철 교수팀,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가 공동 진행한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 유명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이날 자에 게재됐다.
'원자핵이 결정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결정상과 결정상 사이의 가역적 전이(Reversible disorder-order transitions in atomic crystal nucleation)' 제목의 이번 논문은 학계에서 오랜 난제였던 결정핵 생성 원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인정 받았다.
원자의 크기는 수 옹스트롬(Å·백억분의 1m) 수준으로 작고, 밀리초(ms·1000분의 1초) 단위로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기존 기술로는 핵생성 과정을 직접 관찰하기 어려웠다. 핵생성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이 등장했지만 실험을 통한 증명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
공동연구진은 핵생성 과정을 원자 수준에서 실시간으로 관찰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했다. 우선 원자 한 개 두께의 얇은 그래핀 막 위에 전자빔을 받으면 금 원자를 방출하는 나노 물질을 합성했다.
이후 합성된 시편을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가 보유한 세계 최고 성능의 투과전자현미경(TEM)으로 관찰하며 금 결정의 형성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투과전자현미경의 전자빔을 받고 방출된 금 원자는 그래픽 박막 위에서 뭉치며 나노결정을 형성한다. 관찰 결과, 안정적인 결정핵이 탄생할 때까지 원자들은 무질서하게 뭉친 덩어리 구조(비결정상)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 구조(결정상)의 두 상태를 가역적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결정핵의 크기가 성장함에 따라 가역적인 반응은 비가역적으로 변했다. 이는 결정핵이 처음부터 규칙적으로 정렬된 결정상으로 성장한다는 전통적인 핵생성 이론과 상반되는 결과다.
또 연구진은 결정핵의 크기가 성장함에 점점 결정상 상태로 머무르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도 확인했다. 지름이 약 1nm일 때는 10%의 확률로 결정상 상태를 가졌지만 지름이 약 2nm를 넘어가면 90% 이상의 확률로 결정상으로 존재했다. 다시 말해 처음엔 대부분 비결정상이었던 결정핵이 성장해 최종적으로는 결정상 상태를 이루는 것이다.
이밖에 연구진은 결정핵이 결정상으로 머무르는 시간이 길수록 더 큰 크기의 나노결정이 형성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예를 들어 2nm²면적의 나노결정이 형성될 때는 절반 정도의 시간만 결정상 형태로 있었지만 4nm² 면적의 나노결정이 형성될 때 결정핵은 대부분의 시간을 결정상 형태로 존재했다.
박정원 연구위원은 "핵 생성 과정의 새로운 원리를 발견함과 동시에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했다"며 "원자 몇 개가 뭉친 초기 단계에서는 결정상과 비결정상을 오가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적어 두 상태를 반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원철 교수는 "박막 증착 공정의 극 초기 상태를 실험적으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며 "반도체 소재 분야 원천기술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삼성전자가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을 통해 힘을 보탰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은 2013년부터 10년간 1조5000억원을 출연해 기초과학, 소재기술, 정보통신기술(ICT) 등 연구 분야에서 매년 3차례(상·하반기 자유공모, 연 1회 지정테마) 과제를 선정해 지원하는 공익 사업이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