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한 나라의 전반적인 경제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는 주요 잣대 가운데 하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지난해 9월 기준 생활비가 가장 비싼 도시 조사에서 프랑스 파리와 홍콩, 스위스 취리히가 공동 1위, 일본 오사카가 5위, 미국 뉴욕 등이 공동 7위로 나타난 게 대표적 예다. 물가의 변동은 국가의 거시경제 운영뿐만 아니라 개인의 소득과 소비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오르내림은 비상한 관심을 끈다.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경기침체를 경험한 가운데 최근 인플레이션(inflation·이하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물가수준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00원 하던 아이스크림이 올해는 1100원이 되는 식으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이전보다 비싸지는 현상이다. 그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인플레가 발생하는 이유는 수요 측면에서 총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통화량이 늘어났다(고전학파)거나 소비와 투자, 정부 지출이 늘어난 때문(케인스학파)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공급 측면에서는 총공급이 줄어들어 물건이 모자라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인플레가 발생하면 물건이나 부동산 등 실물의 가치가 오르는 반면 화폐 가치는 하락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폐를 보유하기보다는 실물을 확보하려 해서 저축이 줄고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 또 외국에 비해 상품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에 수출이 줄고 수입이 늘어나 국제수지가 악화된다. 금리(이자율)와 환율은 물가와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 불거지고 있는 인플레 논란은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시중에 돈이 넘쳐나고 있어서다. 물가가 내리는 디플레이션인플레와 달리 물가수준이 내리는 현상은 디플레이션(deflation)이라고 한다. 지난달 1000원 하던 붕어빵이 이달 980원, 다음달 950원 등으로 하락하는 식이다. 디플레이션(이하 디플레)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20년의 장기불황(잃어버린 20년)을 겪었던 이웃 일본에서는 2009년 -1.4%, 2010년 -0.7%의 물가상승률을 나타내는 등 자주 발생하기도 했다. 디플레의 원인이나 영향은 인플레와 정반대라고 보면 된다. 총수요가 줄고 물건 등 총공급이 늘어나기 때문으로 사람들은 실물보다 화폐를 더 선호하게 된다. 경기침체속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대체로 경제가 좋을 때는 물가가 상승한다. 그런데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도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고 하는데 정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과 물가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중동 국가들이 석유를 자원무기화하면서 석유 공급을 줄였고 이로 인해 원유가격이 급등하는 등 전반적인 인플레가 발생했으나 물건 가격이 급등하자 소비가 줄어 경제가 침체국면에 빠진 적이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돈을 풀면 화폐 공급이 늘어나 물가가 상승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 돈줄을 죄면 시중에 돈이 없어져 경제가 나빠진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 경제가 슬럼프에 빠졌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더 무서운 ‘D의 공포’흔히 물가가 하락하면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디플레가 계속되면 사람들은 소비를 줄여 화폐를 보유하려 하고 생산자들은 물건 판매가 지지부진하다는 이유로 생산을 줄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전반적으로 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전체적인 경제 규모가 쪼그라들게 된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같은 극심한 경제침체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D(디플레이션)의 공포’라고 부른다. 유럽연합(EU)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가 지난해 8월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0.2%라고 발표하면서 코로나19 사태로 유럽에 D의 공포가 현실화됐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물가상승을 낮추는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나 디플레 모두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경기침체 우려가 큰 디플레보다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인플레가 상대적으로 낫기 때문에 주요 국가는 어느 정도 물가가 오르는 범위에서 경제를 운용하려 한다. 물가가 수십 배 이상 폭등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 초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의 폭을 낮추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화폐 공급을 관리하는 한국은행도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하는 수준까지 물가상승을 용인하는 ‘물가안정목표제’를 운용하고 있다. 현재 목표는 2%로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을 2% 수준으로 묶어 경제가 지나치게 과열되거나 침체되지 않으면서 성장을 지속하도록 통화량을 조절하려 한다. 그러나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5%로 2019년(0.4%)에 이어 2년 연속 0%대에 그쳤다. 경제가 충분히 성장하도록 돈을 풀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 NIE 포인트① 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에 돈을 푸는 것과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돈줄을 죄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나은 정책 방향일까.
② 코로나19 사태로 경제 전반이 위축된 반면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등 일부 자산만 가격이 오르는 상황인데 앞으로 경제 전반에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할 수 있을까.
③ 실업률이 높으면 인플레이션이 낮고 실업률이 낮으면 인플레이션이 높은 현상이 나타나는데(이를 도식화한 것이 필립스곡선이다) 그 이유는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