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충격에 대비해 내진 설계를 해야 한다.” 2009년 1월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당시 사장, 현 부회장)가 전 직원에게 강조한 메시지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도쿄 시내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건물이었던 임피리얼호텔을 예로 들었다. 그는 “회사도 건물과 마찬가지로 고정비를 최대한 줄이고 외부 충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LG생건은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한한령 등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어김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기 속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2005년 이후 ‘16년째 성장’이란 기록을 세웠다.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구축한 ‘내진 설계’가 이번에도 힘을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실적 개선 영향 커LG생건은 지난해 매출 7조8445억원, 영업이익 1조2209억원, 순이익 8131억원을 기록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전년보다 각각 2.1%, 3.8%, 3.2% 늘었다.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모두 사상 최대치다. 국내 화장품업체들이 모두 부진한 성적을 낸 것과 대조된다. 차 부회장이 처음 대표로 부임한 2005년 실적과 비교하면 매출(1조392억원)은 654.8%, 영업이익(717억원)은 1602.7% 급증했다. 순이익(719억원)은 1030.8% 늘었다.
작년 4분기도 역대 4분기 가운데 최고 실적을 거뒀다. 매출은 전년 대비 4% 증가한 2조944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은 2563억원으로 6.3% 늘었다. 중국 최대 쇼핑 축제인 광군제 실적이 영향을 미쳤다. LG생건의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후’ ‘오휘’ ‘CNP’ 등은 지난해 광군제에서 전년 대비 174% 증가한 26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중국 따이궁(보따리상)들이 활동을 재개하고, 미주 사업을 확대한 것도 실적 개선 요인으로 꼽힌다.
작년 초반 부진했던 화장품 실적이 회복세를 보였다. LG생건의 화장품 부문 매출은 지난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6.4% 감소한 데 이어 2분기엔 16.7% 줄었다. 하지만 3분기엔 1.5%, 4분기엔 0.9%까지 매출 감소폭을 줄였다. 지난해 화장품 부문 매출은 5조5524억원, 영업이익은 9647억원이었다. ‘후’ 3년 연속 매출 2조원 넘겨코로나19에도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가 성장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국내 매출 1위 화장품 브랜드인 후는 지난해 2조6100억원의 매출을 올려 3년 연속 2조원대 매출을 이어갔다. 2016년 1조2083억원이던 후의 매출은 2018년 처음 2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2019년 2조5800억원을 기록했다.
LG생건 관계자는 “4분기 후의 매출은 19%, 오휘는 37% 증가하는 등 점차 성장세를 회복하고 있다”며 “특히 세계에서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화장품 시장인 중국에서 4분기 화장품 매출이 41% 늘어나는 등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도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 지난해 4분기 LG생건의 생활용품(홈케어&데일리뷰티) 부문 매출은 1조8733억원으로 25.9% 늘었다. 음료(리프레시먼트) 부문 매출도 전년 동기보다 4.3% 늘어난 1조5132억원을 기록했다. 생활용품과 음료 부문 영업이익도 각각 63%, 26.2% 증가하는 등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증권업계에서도 LG생건의 사업구조를 높게 평가한다. 윤정한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프리미엄 화장품과 프리미엄 생활용품 등 수익성 높은 제품군의 매출이 늘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미래에셋대우는 LG생건의 올해 매출이 8조6870억원, 영업이익은 1조4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