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신입 공채 사라지면

입력 2021-01-27 18:01
수정 2021-01-28 00:16
기업들이 비슷한 시기에 신입사원을 대규모로 뽑는 공개채용(공채)은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독특한 고용방식이다. 일본은 1920년대 불황기에 취업난이 사회문제가 되자 미쓰이·미쓰비시 같은 대기업들이 “입사시험은 졸업 후에 치른다”고 합의한 게 공채의 기원이 됐다.

일본에선 대학 졸업예정자들이 3월에 취업활동(슈카쓰·就活)을 시작해 10월에 취업이 내정되고, 이듬해 입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방식을 삼성이 1957년 도입하면서 국내에서도 공채시대가 열렸다. 당시 삼성물산이 27명을 뽑는 공채에 1200여 명이 몰릴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나이·학력 등으로 서열을 매기는 한국과 일본에서 고도 성장기에 기업들이 연공서열제를 적용하고, 이를 뒷받침할 공채제도를 채택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신입사원들이 한데 모여 기마 자세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글을 제창하거나, 무박2일로 수십㎞ 행군을 하는 게 당연시되던 분위기였다.

지난 60여 년간 기업의 핵심 채용수단이던 공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재계 3위인 SK그룹이 내년부터 대졸 신입사원 공채를 전면 폐지하기로 확정했다. 10대 그룹 중 절반이 수시채용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기업들은 갈수록 업무가 세분화·전문화하는 상황에서 신입사원 공채로는 직무에 적합한 인재를 적시에 뽑기 어렵다는 고충을 오래전부터 토로해왔다. 앞서 현대차그룹이 2019년, LG그룹이 지난해 각각 공채를 폐지했다. 이번엔 SK도 현실과 동떨어진 공채를 더는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삼성그룹도 폐지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사회적 파장을 감안해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기술혁신 시대에 취업준비생들이 대기업 공채나 공무원 시험에만 목을 매선 취업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취업 전 다양한 인턴활동과 사회경험을 통해 실무역량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대학교육과 노동·고용제도도 ‘상시채용 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 할 때다. 직원을 한번 뽑으면 60세 정년까지 해고가 거의 불가능한 제도 아래서 신입사원 채용이 늘어나길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 최강’ 고용 경직성을 고수한다면 수시채용이 늘면서 취업문이 더 좁아질 수 있다. 변화에 걸맞게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