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개발 '삐걱'…흑석2 "사업 못하겠다"

입력 2021-01-27 17:30
수정 2021-02-04 18:44

지난 15일 선정된 1차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후보지 8곳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동작구 흑석2구역이 사업 추진을 사실상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제시한 조건으로 사업성을 분석해보니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오는 3월 발표할 2차 후보지가 될 수 있는 47곳에서는 다세대 건립 등 ‘지분 쪼개기’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분 쪼개기는 단독주택을 허물고 빌라 등을 지어 분양 대상자를 늘리는 것을 가리킨다. 공공재개발이 시작부터 삐꺽거린다는 지적이다. 흑석2구역 “공공재개발 사업성 없다” 이진식 흑석 2구역 추진위원장은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정부로부터 제시받은 용적률과 분양가 등으로 공공재개발 사업성을 분석한 결과 주민들이 동의할 만큼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주민 동의가 힘든 만큼 민간 재개발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추진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흑석2구역에 용적률 450%를 적용해 1310가구를 짓는 방안을 제시했다. 흑석2구역에서 기대했던 용적률 600%보다 150%포인트 낮은 수치다. 정부의 공공재개발 규제 완화 방안에 따르면 공공재개발은 국토계획법 상한용적률의 120%까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준주거지역인 흑석2구역은 상한용적률 500%의 120%인 600%까지 되리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층수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추진위에서는 최대 50층까지 계획했지만, 정부는 층수 상한을 40층으로 통보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서울시의 ‘한강변 관리 기본계획’에 막혀 40층 이상으로는 지을 수 없다고 했다”며 “정부와 서울시 간 협의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분양가격은 공공재개발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됐다. 흑석2구역에 닥친 가장 큰 문제는 분양가격이다. 정부는 흑석2구역의 분양가를 인근 아파트 시세의 60%로 책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접한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과 흑석한강센트레빌의 전용면적 84㎡ 시세는 16억~20억원이다. 이 단지 시세를 반영한 최대 분양가는 3.3㎡당 3200만원 수준이다. 공공재개발을 하지 않아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았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추진위 측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공공재개발을 하면 임대가 늘고 공공기관의 통제를 받는데 이렇게 인센티브가 약하다면 할 이유가 없다”며 “주민들에게 공공재개발 동의를 받을 명분이 사라졌다”고 했다.

흑석2구역 외 강북5구역, 용두1-6구역 등 다른 1차 후보지에서도 공공재개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흑석2구역이 공공재개발 포기를 확정하면 다른 구역들에서도 이탈이 잇따를 수 있다”고 했다. 후보지 ‘지분 쪼개기’ 만연2차 공공재개발 후보지가 될 수 있는 구역에서는 다세대 신축 등 지분 쪼개기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재개발 구역 47곳의 건축허가 내역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99건의 빌라 등 다세대 신축허가가 이뤄졌다. 빌라 한 채당 10가구 안팎이 들어서는 것을 감안하면 1000가구 정도가 증가한 셈이다.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인근인 용산구 원효로1가 30 일대에서는 지난해 10건의 빌라 신축 허가가 이뤄졌다. 옛 장위11구역(장위동 66 일대)과 옛 장위9구역(장위동 238 일대)에서 각각 10건과 7건의 다세대주택 건축허가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건축허가가 가장 많았던 곳은 강동구 고덕동 옛 고덕1구역(고덕동 501 일대)이다. 모두 11건의 건축허가가 이뤄졌다. 과거 단독주택재건축구역으로 묶였다가 해제된 곳이다.

오는 3월 발표할 2차 공공재개발 후보지는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곳과 아예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던 지역이 대상이다. 공공재개발은 언제 구역 지정을 받게 되든지 후보지 공모일(9월 21일)로 권리산정일이 앞당겨진다. 이 때문에 신축 빌라를 매수하더라도 새 아파트를 받지 못하고 현금청산될 위험이 있다. 현금청산되면 입주권을 받지 못하게 된다.

성북동 B공인 관계자는 “허가는 사전에 받았지만 준공이 9월 21일 이후인 경우가 있어 현금청산되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배정철/전형진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