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연방정부 물품 조달 때, 미국산 우선 구매"

입력 2021-01-26 17:19
수정 2021-01-27 05:08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연방정부가 물품을 조달할 때 미국산 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제조업과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연방정부의 구매력을 동원하겠다는 것으로 대선 때 공약한 ‘보호주의’ 정책을 공식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을 재건할 세금을 쓸 때 미국 상품을 사고 미국 일자리를 떠받칠 것”이라며 이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백악관도 성명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정부가 납세자의 돈을 쓸 때 그 돈이 미국 노동자가 미국산 부품으로 제조한 미국산 제품에 쓰이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명령에 따르면 연방정부가 미국산 대신 외국산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예외조항이 대폭 축소된다. 미국산 제품을 규정하는 기준도 엄격해진다. 구체적인 기준은 추후 결정될 예정이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엔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담당할 고위직이 신설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밖에 모든 연방정부 차량을 미국산 전기자동차로 바꾸고, 미국 항만 간 운송 시 미국 선박을 이용하도록 한 ‘존스법’을 엄격히 실행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연간 6000억달러(약 660조원)에 달하는 미 연방정부 조달시장에서 외국 기업이 배제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 정부에 납품하는 한국 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연방정부 조달액 중 외국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5%가량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당장 외국 기업이 받는 타격이 최대 3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실제 타격은 이보다 커질 수 있다. 이날 발표에선 빠졌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때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공약하면서 임기 4년간 정부 물품 구매액을 4000억달러 늘리고 5세대(5G) 통신, 인공지능, 전기차 등 첨단기술에 30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여기에도 미국산 제품 우선 구매 원칙이 적용된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때 인프라 및 친환경 에너지에 2조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공약했다. WSJ는 “여기에도 바이 아메리칸 원칙이 적용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행정명령은 미국 정치권의 컨센서스가 자유무역에서 미국 제조업 진작을 위한 직접적인 정부 개입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보호주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때 핵심 승부처였던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동북부 공업지역) 표심을 잡기 위해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약속했다. 다만 미국 제조업 지원 등을 위해 무차별 관세전쟁을 벌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연방정부의 구매력 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게 차이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대한 미국 노사의 반응은 엇갈렸다. 미국 최대 노조 조직인 미국노동총연맹(AFL-CIO)의 리처드 트럼카 위원장은 “미국 제조업 활성화를 위한 좋은 첫걸음”이라고 환영했다. 반면 존 머피 미국상공회의소 수석부회장은 “지금도 엄격한 바이 아메리칸 규정을 강화하면 정부 프로젝트의 비용을 인상시키고,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을 위한 잠재력을 훼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바이 아메리칸 정책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제소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WTO 정부 조달협정은 정부 입찰 때 동등한 참가 자격을 주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이를 의식한 듯 성명에서 “대통령은 모든 나라가 납세자들의 세금을 자국의 투자 촉진에 쓸 수 있도록 무역 규칙을 현대화하는 데 동맹국·협력국과 공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