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후궁이라 하면 흔히 궁중 암투를 벌이는 요녀(妖女)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그런 선입견을 없애고 싶었어요. ‘여성 조정(朝廷)’ 격인 내명부(內命婦)의 일원으로서 왕과 왕비를 보좌했던 후궁의 진정한 면모를 되살려야 합니다.”
이달 초 《조선왕실의 후궁》(지식산업사)을 펴낸 이미선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사진)의 말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후궁 175명의 입궁 경로와 역할, 위상을 전수조사한 첫 연구서다. 그동안 역사의 곁가지로 취급돼온 후궁 제도의 변화 양상을 체계화했다.
이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엔 연산군의 장녹수, 광해군의 김개시, 숙종의 장희빈 등 이른바 당대의 문제적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만 실려 있다”며 “공식 사료 부족이 후궁에 대한 편견을 낳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짚었다. 또 “아무리 엄정한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더라도 남성중심적 역사관의 함정을 피할 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후궁들이 내명부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떻게 생활했는지 앞으로 더욱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편견 속에 홀대받아 왔던 후궁의 역사를 재정립해 조선시대 여성사의 범위를 더욱 넓히고 싶습니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후궁의 개념을 ‘간택 후궁’과 ‘비간택 후궁’으로 구분했다. 간택 후궁은 명문 사대부 집안 출신으로 간택·혼례 절차를 거쳐 입궁한 여성들이다. 비간택 후궁은 궁인이나 노비 등 여러 신분의 여성이 다양한 경로로 뽑힌 경우다. 신분은 간택 후궁 쪽이 훨씬 높았다. 하지만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무수리 출신이고, 철종의 할아버지 은언군은 궁녀 출신이자 사도세자의 후궁이었던 숙빈 임씨의 아들이다. 그는 “선조 이후 후궁 소생 왕자가 왕위에 오르는 사례가 많았다”며 “철종부터 왕실 직계자손이 단절돼 방계자손들이 왕이 됐다는 사실만 봐도 후궁의 영향력은 작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의 다음 연구과제는 왕실 가계도 속 후궁들의 기록을 역추적해 실제 삶을 복원하고, 그 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후궁의 무덤은 60여 기, 후궁의 상장례(喪葬禮) 기록은 6건뿐”이라며 “각종 답사와 자료 조사를 통해 이 같은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궁중 생활사와 각종 미시사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