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해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 1위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영국과 이탈리아는 기존에 들어왔던 투자마저 빠져나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선진국 FDI가 크게 줄더는 반면 전염병에 빠르고 강력하게 대응한 신흥국들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트럼프 '리쇼어링'도 허사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5일 발표한 '투자 트렌드 점검' 보고서에서 지난해 글로벌 FDI 규모가 전년(1조5398억달러) 대비 42% 급감한 8590억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보류했던 2009년(1조2360억달러)을 30% 이상 밑도는 규모다. 이 보고서는 매년 6월께 나오는 공식 FDI 집계에 앞서 잠정치를 활용해 작성한 자료다.
중국은 그러나 4% 증가한 1630억달러(약 180조1300억원)의 FDI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중국 투자를 연기하거나 철수한 다국적 기업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미·중 갈등 와중에도 중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미국 기업들의 투자는 이어졌다.
테슬라는 상하이공장 증설에 착수했고, 월마트는 중국 내 매장을 2022년까지 현재의 두 배인 1000여개로 늘리기로 했다. 엑슨모빌도 100억달러 규모 화학공장 신설에 착수했다. 독일의 아디다스도 중국 내 오프라인 매장 확대에 나섰다. 스타벅스, 월트디즈니, 아스트라제네카 등도 중국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에 반해 지난 수십 년간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미국은 코로나19 차단에 실패하면서 지난해 FDI 유입이 1340억달러로 49%나 급감했다. 미국에 대한 FDI는 2016년 4717억달러를 정점으로 매년 감소세를 보여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각종 혜택과 압박을 병행하면서 중국에서 미국으로 제조시설을 옮기는 리쇼어링(해외공장의 자국 복귀)을 추진하고 해외 기업의 투자 유치를 노력했지만, 이런 정책들이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해석되면서 오히려 기업들이 대(對) 미국 투자를 줄이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코로나19 방역에도 실패하면서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줬다.
다만 지난해 미국에 대한 투자를 보류한 기업들이 많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미국이 다시 1위로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미중관계 전문 컨설팅업체 로듐그룹은 "코로나19 사태가 개방경제인 미국에 미치는 영향이 폐쇄적인 중국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에 미국은 FDI 유치의 회복도 빠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흥국 비중 70% 넘어서전체 FDI 가운데 선진국에 대한 FDI는 69%나 감소했다. 유럽연합(EU)에 대한 FDI는 2019년 3440억달러에서 지난해에는 -40억달러로 내려갔다. UNCTAD는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컸던 영국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위스에서 신규 유치가 거의 없었던 가운데 기존에 들어왔던 프로젝트들마저 철수하면서 마이너스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독일(-61%), 프랑스(-39%) 등도 타격이 컸다.
반면 신흥국에 대한 FDI는 12% 감소해 선진국에 비해 선방했다. 신흥국 FDI 유치 규모는 6160억달러로 전체의 70%를 넘어섰다. 2009년 처음으로 전체의 50%를 넘어선 지 11년 만이다.
인도에 대한 FDI는 13% 늘어났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확산으로 선진국 기업들이 인도에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 인프라 투자를 대거 늘렸고, 백신 공장 건설 투자도 이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UNCTAD는 "백신 공급이 시작됐다 해도 코로나19 종식까지는 아직 위험 요인이 많다"며 국제 투자 부진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