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덕에…中, 외국인 투자 美 제치고 1위

입력 2021-01-25 17:20
수정 2021-02-02 18:20
중국이 지난해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 1위에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선진국 FDI가 크게 줄어든 데 비해 전염병에 빠르고 강력하게 대응한 신흥국들은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5일 ‘투자 트렌드 점검’ 보고서를 통해 작년 세계 FDI 규모가 8590억달러로 전년(1조5398억달러)보다 42% 급감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보류한 2009년(1조2360억달러)보다 30% 이상 적은 규모다. 이 보고서는 매년 6월께 나오는 공식 FDI 집계에 앞서 잠정치를 활용해 작성한 자료다.

지난해 중국은 전년 대비 4% 증가한 1630억달러(약 180조1300억원)의 FDI를 끌어들였다. 중국 투자를 연기하거나 철수한 다국적 기업이 일부 있었지만 미·중 갈등에도 중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미국 기업들의 투자는 이어졌다. 첨단산업과 인수합병(M&A) 부문에서 각각 11%, 5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테슬라는 상하이공장 증설에 착수했고 월마트는 중국 내 매장을 2022년까지 현재의 두 배인 1000여 개로 늘리기로 했다. 엑슨모빌도 100억달러 규모 화학공장 신설에 들어갔다. 독일 아디다스는 중국 내 오프라인 매장 확대에 나섰다. 스타벅스, 월트디즈니, 아스트라제네카 등도 중국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에 비해 지난 수십 년간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미국은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하면서 지난해 FDI가 1340억달러에 그쳐 전년보다 49% 급감했다. 미국에 대한 FDI는 2016년 4717억달러를 정점으로 매년 감소세를 보여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가 각종 혜택 제공과 압박을 병행하면서 중국에서 미국으로 제조시설을 옮기는 리쇼어링(해외 공장의 자국 복귀)을 추진하고 해외 기업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런 정책들이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해석되면서 오히려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줄이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FDI 통계는 미국이 지배해온 세계 경제의 중심이 중국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다만 투자 철회가 아니라 보류한 기업이 많은 만큼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미국이 다시 1위에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중 관계 전문 컨설팅업체 로듐그룹은 “코로나19 사태가 개방 경제인 미국에 미치는 영향이 폐쇄적인 중국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에 미국은 FDI 유치 회복도 빠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전체 FDI 가운데 선진국의 FDI는 전년보다 69% 줄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컸던 영국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위스에서 신규 투자 유치가 거의 없었다.

반면 신흥국의 FDI는 12% 감소하는 데 그쳤다. 신흥국의 FDI 유치 규모는 6160억달러로 전체의 70%를 넘어섰다. 2009년 처음으로 전체의 50%를 넘어선 지 11년 만이다. 인도의 FDI는 13% 늘어났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확산으로 선진국 기업이 인도에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 인프라 투자를 대거 늘렸고, 백신 공장 건설 투자도 이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UNCTAD는 “백신 공급이 시작됐다고 해도 코로나19 종식까지는 아직 위험 요인이 많다”며 국제 투자 부진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