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교역량을 고려한 실질적인 원화 가치가 20개월 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수출 가격경쟁력이 그만큼 나빠졌다는 뜻이다. 경기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수출에 복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REER)은 109.97로 전월(109.65)보다 0.29% 올랐다. 실질실효환율이 2019년 4월(110.13) 후 가장 높은 것은 물론 2019년 평균(108.46) 수준도 웃돌았다.
BIS 실질실효환율은 세계 60개국의 물가와 교역 비중을 고려해 계산한 통화의 실제 가치를 말한다.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그만큼 통화의 실질가치가 고평가됐다는 의미다.
원화 실질가치는 코로나19 사태로 달러 등 안전자산 가치가 부각되면서 지난해 1월 107.48에서 5월 104.80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Fed) 등 주요국이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시중에 돈을 풀면서 달러와 엔화 등 주요국의 통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달러의 실질실효환율은 지난 한 해 동안 3.13% 하락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2019년 12월 말보다 2.37% 올랐다. 지난해 원화 절상률은 수출 경쟁국인 일본(-0.89%) 대만(2.15%) 홍콩(-4.1%) 수준도 웃돌았다.
원화 실질가치가 비교적 빠르게 올라가면서 청신호가 켜진 수출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작년 12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보다 12.6% 증가한 514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2018년 11월 후 처음으로 월간 수출액 50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달 1~20일 수출액도 전년 동기 대비 10.6% 늘어난 282억달러를 기록했다.
과거처럼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의 수출 품질 경쟁력이 높아진 데다 해외 생산시설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자동차·철강 대기업 일부는 원화 실질가치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많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올 상반기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50~1060원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환헤지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을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같은 양을 수출해도 원화로 환산한 수익이 줄어들게 된다”며 “채산성이 나빠진 기업들이 이익을 높이기 위해 수출가격을 올리는 과정에서 실적 타격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화 가치가 10% 절상되면 조선업 등 운송장비(-3.8%포인트), 일반기계(-2.5%포인트), 정밀기기(-2.4%포인트) 업종의 영업이익률이 2~4%포인트 내려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 실질실효환율
교역 상대국과의 교역량과 물가를 반영해 한 나라의 화폐가 상대국 화폐에 비해 실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췄는지를 보여주는 환율. 외국 돈에 대한 우리나라 돈의 상대가치를 보여주는 ‘명목환율’과는 다른 개념이다. 실질실효환율이 100 이상이면 자국 통화가 고평가됐다는 뜻이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