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멈출 줄을 모르는 ‘전셋값’ 오름세는 서민의 삶을 힘들게 하지만, 우리네 말글살이에도 곤혹스러움을 안겨준다. ‘값’은 본래 물건을 사고팔 때 치르는 대가를 말한다. 1957년 완간된 <조선말 큰사전>(한글학회)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지금은 ‘값’의 용법이 10여 가지는 된다. 의미가 더해지면서 말의 쓰임새가 확대됐다는 뜻이다. 전셋값과 전셋돈은 달라…구별해 써야‘전세(傳貰)’의 ‘세’는 ‘세낼 세(貰)’ 자다. ‘세내다’란 빌리다, 즉 일정한 삯을 내고 남의 소유물을 빌려 쓴다는 뜻이다. 이 임차제도는 특이하게도 기한이 만료되면 보증금을 돌려준다. 그 앞에 ‘전할 전(傳)’ 자가 쓰였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계약기간 동안 ‘일정한 삯’을 주인한테 ‘전하는 또는 맡기는’ 것이다. 그 돈을 전세금 또는 전셋돈이라고 한다. 민법상 용어도 ‘전세금’이다. “전세금(전셋돈)을 내야 하는데,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라고 한다. 이를 “전셋값을 내야 하는데~” 또는 “전셋값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식으로 말하면 어색하다. 전셋돈과 전셋값의 용법 차이가 드러난다.
이 ‘전세’가 지금과 같이 자리 잡기까지에는 다소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글학회에서 1957년 펴낸 <조선말 큰사전>에는 ‘전세’가 傳貰로 나온다. 그런데 1986년 나온 <새우리말사전>에는 專貰로 올랐다. 이어 1992년 발간한 <우리말 큰사전>에는 ‘전세’ 표제어에 傳貰와 專貰를 함께 처리했다. 말의 유래와 용법에 혼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세(專貰)’는 ‘전세(傳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이다. 專貰는 일정기간 동안 독점적으로 빌리는 것을 뜻한다. ‘오로지 전(專)’ 자가 쓰였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전세기, 전세버스에서 그 쓰임새를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장소나 물건을 혼자 독점하다시피 하는 사람에게 “네가 전세 냈냐!”라고 따질 때도 같은 말이다. ‘대절’은 일본식 용어…전세(專貰)로 순화이 ‘전세(專貰)’는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 그것이 ‘전세(傳貰)’와 구별되는 차이점이다. 그래서 전세버스를 빌리는 데 들어간 돈은 이용료, 즉 비용이다. ‘전세버스비’라고 한다. 무심코 “전세버스값이 꽤 비싸네”라고 하면 안 된다.
“버스값이 또 오른대.” “일본은 택시값이 비싸기로 유명하지.” 이런 데 쓰인 버스값, 택시값도 잘못 쓰는 용법이다. 이런 지적은 나온 지가 꽤 오래됐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입에 오르내린다. 한번 잘못 익힌 말은 바로잡기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값’이 물건을 사고팔 때 치르는 돈인 데 비해, 그것을 이용하는 대가로 치르는 돈은 요금 또는 비용이다. 버스비(료), 택시비(료)가 바른 말이다. 이를 고유어인 ‘삯’이라고 하면 더 좋다. ‘삯’은 일을 한 데 대한 품값으로 주는 돈 또는 어떤 물건이나 시설을 이용하고 주는 돈이다.
예전에 ‘대절버스’라는 말이 쓰였다. 대절(貸切)은 일본식 한자어인데, 그것을 대체한 게 전세(專貰)다. 앞서 살핀 전세(傳貰)와 함께 우리가 만든 한국 한자어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옛날 있었던 전매청(專賣廳, 현 KT&G)이 이 ‘오로지 전’을 썼다.
국립국어원을 중심으로 정부에서는 지속적인 우리말 순화 작업을 벌여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국어순화자료 제2집(1978, 문교부)’을 비롯해 ‘국어순화자료-학교 교육용(1983, 문교부)’ ‘국어순화용어자료집-일본어투 생활 용어(1997)’ 등이 그 결과물이다. 하지만 우리말 속 일본어 잔재는 뿌리 깊게 남아 요즘도 간혹 “버스를 대절했다” 식으로 말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