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승 n!=n×(n-1)×…×2×1은 n이 커짐에 따라 빠른 속도로 커진다. 놀라울 정도로 빨리 커져서 기호조차 느낌표를 사용할 정도다. 계승 n!의 자릿수를 직접 계산하지 않고 알 수 있을까?”
'365 수학: 모든 사람을 위한 수학 다이어리'(사이언스북스)의 1월 22일자 ‘22!는 22자릿수’를 펼쳤을 때 나오는 첫 문장이다. 혼이 나갔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외계어 같았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수학 성적 53점을 자랑했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 책은 대한수학회가 기획했다. 박부성 경남대 수학교육과 교수, 정경훈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이한진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수학전공 교수, 이종규 숭실대 수학과 교수, 이철희 고등과학원 연구원 등 5명이 함께 썼다. 수학 공식 또는 수학의 각종 증명들, 아직 풀리지 않은 난제 등 365+1개의 수학 이야기를(윤달까지 포함) 1년 동안 매일 1편씩 읽도록 구성됐다.
공저자 중 1명인 정경훈 교수(사진)를 만났다. 다음은 정 교수와 1문 1답이다. 첫 번째 질문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다.
▷책을 몇 번씩 읽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읽으시면 됩니다.”
▷쓰신 동기가 무엇입니까.
▶“일상에서 수학이 너무 멀리 있어서요. 주변에서 수학 관련 이야기를 볼 일이 없습니다. 사칙연산 같은 기본적인 지식만 있으면 생활할 수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수학의 세계는 정말 넓잖아요. 그런 지적 유희의 경험을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해 보자고 권하고 싶었어요.”
▷왜 다이어리 형식으로 쓰셨나요.
▶“하루 1개만 스치듯 봐도 1년이 지나면 윤달까지 합쳐서 366개의 수학 지식을 알 수 있으니까요. 수학 관련 전공자는 자신이 아는 내용을 다시 훑어볼 수 있을 것이고, 일반인들은 아주 조금이라도 수학 지식과 1밀리미터라도 가까워질 수 있겠죠.”
▷저는 수포자입니다. 수학을 포기한 사람이죠.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괴로웠습니다.
▶“사실 수포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요. ‘나는 수포자’라 생각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 실제로는 수포자가 아니거든요. 수학 문제를 풀 때 ‘이걸 수식으로 어떻게 나타낼 수 있지’란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수포자가 아닙니다. 문제를 읽고 수식으로 바꾸는 게 곧 수학적 언어로 풀고 있다는 뜻입니다. ”
▷네?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에 문제점이 많습니다. 수학을 마치 암기과목처럼 가르쳐요. 지나친 선행학습도 문제고요. 뭐든 과식하면 소화할 수 없잖아요.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은 단원당 개념 이해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단계가 빠져 있어요. 문제집만 정신없이 풀죠. 문제집에선 수학 개념을 설명하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수학에 흥미가 생길 틈이 없습니다. ‘나는 수포자야. 나는 수학에 재능이 없어’라고 지레짐작하고 수학을 무서워하게 만들죠.”
▷현재 국내 수학 교육의 문제점 중 가장 큰 건 무엇일까요?
▶“과거 필수 과목이던 미적분을 선택과목으로 빼 버린 것이죠.”
▷조금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미적분 덕분에 수학이 경제학, 물리학과 같은 다른 분야와 융합될 수 있거든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도 미적분 개념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출현하지 못했을 겁니다. 수학은 모든 학문의 뿌리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만든 게 미적분입니다. 그런데 선택과목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미적분과 만날 기회가 아주 적어졌어요.
▷그렇다면 혹시 자제분들은 수학을 어떻게 가르치십니까.
▶“솔직히 선행학습을 피할 수는 없더라고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선행학습의 속도는 최대한 늦추고 있습니다. 원래 수업보다 한 학기 정도 선행학습하고 있어요. 수학자의 아이마저도 벗어나기가 어려운 현실이란 게 어이 없지요.”
▷수학과 관련된 속설도 많습니다. 그 중 최강은 아마도 ‘남자가 여자보다 수학을 잘한다’는 것일 텐데요. 실제로 그렇습니까?
▶“전혀요. 근거 없는 얘기입니다. 수학과 성별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어요. 아마 과거에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교육을 늦게 받았기 때문 아니었을까 싶어요. 1960년대만 해도 여성들의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율이 낮았으니까요. 지금은 수학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세요?
▶“심심할 때 펼쳐보면서 아주 잠깐이라도 수학의 놀이를 즐기셨으면 해요. ‘피자를 최대한 많이 나누는 법’, ‘사다리타기의 수학’, ‘핵폭발에서 살아남는 방법’ 같은 건 누구든 한 번쯤은 궁금해할 수 있는 문제잖아요. 좀 더 편안하게 수학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