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과 인도가 ‘백신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무상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양대 인구 대국의 아시아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인도가 자국 제약사인 세룸인스티튜트가 제조한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몰디브, 부탄, 방글라데시, 네팔에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인도는 미얀마와 세이셸에도 우호관계 증진을 위해 백신을 지원할 계획이다.
세룸은 세계 최대 백신 제조업체로 디프테리아, 홍역 등의 백신을 연간 15억 정 생산한다. 지난해 아스트라제네카와 수탁생산 계약을 맺고 연 10억 도스(1도스는 1회 접종분)의 생산설비를 갖췄다. 인도 정부에는 1도스당 3달러에 공급하고 있다. 세룸은 노바벡스, 코다제닉스 등이 개발하고 있는 백신의 생산 설비도 구축 중이다.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는 네팔은 히말라야 칼라파니 지역을 두고 인도와 국경 분쟁을 벌이면서 중국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이번 인도의 백신 무료 공급에 흐리다예시 트리파티 네팔 보건부 장관이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네팔 국민에게 인도 정부가 선행을 했다”고 하는 등 양국 관계가 호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도 국유 제약사인 중국의약집단(시노팜)의 백신을 네팔에 무료로 공급하겠다고 나섰지만 네팔 정부가 자료 부족을 이유로 이 백신을 승인하지 않은 상태다.
방글라데시는 중국의 커싱제약(시노백)이 개발한 백신을 11만 도스 공급받을 계획이었으나 시노백이 개발비를 일부 부담하라고 요청하자 백지화했다. 그 대신 인도로부터 백신 200만 도스를 무료로 받았다. 방글라데시 보건당국은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은 일반 냉장시설에서 유통할 수 있어 방글라데시처럼 관련 인프라가 취약한 나라에 적합하다”고 추켜세웠다.
반면 인도의 숙적으로 중국과 친밀한 관계인 파키스탄은 중국으로부터 이달 말까지 50만 도스를 무료로 받기로 했다. 중국은 또 미얀마,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캄보디아, 필리핀 등에 차례로 백신 무료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모더나 등이 개발한 효과가 높은 백신을 선진국이 입도선매하면서 구입이 어려워진 개발도상국에 ‘선공급 후결제’를 내걸고 공략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을 통해 인도의 주변국인 스리랑카, 네팔, 몰디브 등에 항만, 도로 등을 지어 왔다. 인도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빠르게 대항하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관광산업 의존도가 큰 국가들에 백신을 무료로 공급하면서 우호도를 높여 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인도 정부는 1차로 한 달 내에 2000만 도스를 무료로 배포할 계획이며 보건 인력과 인프라 구축도 지원할 예정이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