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힘든 선택을 했다. LG전자를 넘어 LG그룹 전체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혔던 스마트폰 사업에 ‘메스’를 대기로 했다. 누적 적자가 5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사업을 계속 유지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업계에선 지난해부터 그룹 주요 계열사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섰던 구광모 회장이 ‘결단’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마트폰 사업 정리 나서
LG전자는 2010년 ‘옵티머스’ 시리즈를 선보이며 스마트폰 사업을 시작했다. 영업이익을 낸 것은 잠시뿐이었다.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는 2015년 2분기 이후 23분기 연속으로 영업적자를 냈다.
사업부를 매각하거나 접는 게 정석이지만 어느 쪽도 쉽지 않았다. MC사업본부가 ‘선행기술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디스플레이 등 다른 제품을 제조할 때 필요한 핵심 기술 중 상당수가 MC사업본부에서 나온다. 계열사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에도 악영향을 준다. 스마트폰 배터리를 생산하는 LG에너지솔루션 등은 MC사업본부 의존도가 상당하다. 지금까지 LG가 쉽사리 스마트폰 사업을 접지 못했던 배경이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해부터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각 계열사에 CSO(최고전략책임자) 조직을 만들고 중단해야 할 사업과 키워야 할 사업을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당시 CSO 조직이 내놓은 MC사업부에 대한 평가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TV, 생활가전 사업 등을 감안하면 LG전자의 시가총액이 50조원에 달해야 하지만 스마트폰 사업 탓에 20조원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게 골자였다.
‘실용주의 경영’을 내세운 권봉석 LG전자 사장 역시 스마트폰 사업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구광모 회장 주재로 이뤄진 LG그룹 사업보고회에서 스마트폰 사업 존속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MC사업본부를 유지하는 기회비용이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새로운 시도 줄줄이 고배
권 사장은 지난 11일 열린 ‘CES 2021’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디스플레이 양쪽 끝을 말아 화면의 크기를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이는 ‘롤러블폰’을 선보였다. 당시 업계에선 호평이 이어졌다. 반으로 접히는 기존 폴더블폰과 달리 접히는 부분에 자국이 남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LG전자가 사업 축소 발표 직전 롤러블폰을 공개한 것은 스마트폰 기술력 면에서 세계 최정상급임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MC사업본부 매각을 염두에 두고 몸값을 올리기 위한 조치였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LG전자는 삼성전자와 애플과 구분되는 새로운 형태의 제품을 여러 차례 선보였다. 2016년 선보인 모듈형 스마트폰 ‘LG G5’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레고처럼 원하는 기능을 조립해 확장된 경험을 선사한다는 콘셉트였다. 결과는 실패였다. 소비자들의 차가운 반응 탓에 추가 모듈을 출시하겠다던 계획도 무산됐다.
2019년엔 탈착식 보조 화면인 ‘듀얼스크린’을 장착한 제품을 내놨다. 폴더블폰에 대항하기 위해 디스플레이를 두 개로 늘린 것. 삼성전자의 첫 폴더블폰 ‘갤럭시폴드’가 품질 문제로 출시가 미뤄지는 가운데 반짝 흥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인기가 오래가지 못했다.
작년 상반기 선보인 ‘LG 벨벳’은 디자인과 가성비를 내세웠다. 하지만 가격과 스펙(사양)을 함께 낮췄다는 평가를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작년 10월엔 겹쳐진 두 개의 화면 중 상단의 화면을 돌려 ‘T자’로 할 수 있는 이형 폼팩터폰 ‘LG 윙’을 내놨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제품의 판매량이 10만 대에 못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MC사업본부의 수장도 수차례 교체됐다. 2015년 이후 조준호 사장, 황정환 부사장, 권봉석 사장, 이연모 부사장이 MC사업본부장을 거치는 등 부침을 겪었다.
송형석/홍윤정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