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엔 "서해 피살 때 어떤 조치?"…정부 "北에 공조 요청"

입력 2021-01-19 11:48
수정 2021-01-19 13:38
정부가 지난해 9월 북한의 서해상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한국 정부의 조치가 충분했는지를 묻는 유엔의 ‘혐의서한(allegation letter)’에 “북한에 공동 조사를 요구했다”며 문제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북한이 들을 수 있는 국제 통신망이나 남북 핫라인을 두고도 북한에 구조 요청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한 해에만 세 건의 북한 인권 관련 혐의서한을 받은 정부가 유엔에 보내는 공식 답변에서까지 북한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며 한국에 ‘반(反)인권’ 낙인이 찍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한국경제신문 취재 결과 정부는 지난 15일 유엔의 혐의서한에 대해 주제네바 한국대표부 명의로 이같은 답변을 보냈다. 앞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해 11월 우리 정부에 사살된 공무원 이모씨의 피격 사망 관련 정보를 비롯해 가족이 유해를 돌려 받지 못하는 상황, 북한에 억류된 사실 인지 뒤 당국의 조치 등에 대해 유족들이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우려를 담은 혐의서한을 보냈다. 혐의서한은 OHCHR이 특정 국가 정부의 인권 침해 여부에 대한 보고가 있을 경우 해당국 정부에 관련 사실에 대해 소명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말한다.



정부는 다섯 페이지 분량의 답변서에서 피살 사건 당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부는 ‘이씨가 억류된 사실을 인지한 후 구조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조치’를 묻는 유엔의 질문에 “한국 정부는 사건 발생 가장 초기부터 행동을 취해왔으며 관련 당국과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수립했다”고 답했다. 이어 “2020년 9월 24일 한국 정부는 북한에 조사, 사과, 책임자 처벌, 사건 재발 방지 등을 공식 요청했다”며 “북한에 해당 사건에 대한 합동 조사와 양자 간 군사 대화 재개 및 통신선 복구도 요구했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가장 초기부터’ 구조에 나섰다는 설명과 달리, 정부는 당시 북한도 들을 수 있는 국제통신망을 통한 구조 요청에 나서지 않았다. 군은 사건 발생 당시 남북 간 핫라인이 단절됐다고 밝혔는데, 이씨 실종 나흘만인 지난해 9월25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국정원과 북한 통일전선부 간 핫라인을 통해 통지문을 보냈다. 정부의 답변 서한에서조차 “지난 8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해군 장병 수색을 위해 국제 통신망을 통해 수색 작전에 있어서 북한의 협조를 요청했다”고 언급했지만, 정작 이씨의 피살 사건 당시에 국제 통신망 요청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정부는 유해의 소재에 대한 조사 결과를 유족과 공유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유엔의 질의에는 “조사중인 사안”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정부 답변 서한은 “해양경찰청은 유족의 여러 질의에 대해 답했고 조사 진행 사항에 대해 언론 브리핑을 통해 공유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보공개법 9조에 따라 조사 중인 사안의 정보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관련 조항까지 첨부했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 어떠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남북 공조 수사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정부가 지난해 9월 공조 수사를 제안한 이후 진행된 공조 수사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해경이 사건 발생 직후부터 한 달여간 수색을 진행했지만, 해경은 지난해 11월 이씨의 수색 작업을 경비 병행으로 전환한다며 사실상 수사 종료를 선언했다.

정작 북한이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우리 국민을 즉각 총살한 것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정부 답변문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북한에 협조를 요청하거나 북한과의 '공동조사' 요청한 사실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밝히고 있지만 정작 해당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법률분석관은 “북한이 코로나 방역 조치라는 핑계로 우리 국민을 즉각 총살한 것에 대해 정부가 취한 조치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정보공개법 규정을 인용하면서도 해경의 수사 종료와 남북 공조 수사를 위해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OHCHR이 지난해 우리 정부에 북한인권 관련 혐의서한을 보낸 것은 이를 포함해 총 세 차례다. OHCHR은 2019년 11월 20대 북한 선원 2명의 강제 북송한 것을 언급하며 “한국 정부가 북한으로 돌아가 심각한 인권 침해를 마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북송을 강행했다”며 우려를 표했다. 지난해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 발표 직후 정부가 북한 인권 단체들에 대한 사무 검사에 착수한 것과 관련해서도 '시민사회에 대한 위협'이라며 우려를 담은 혐의서한을 보낸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함께 인권과 관련한 표적이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지난해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미국 하원은 이르면 이번달 대북전단금지법을 포함해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할 전망이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