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는 즐거움과 효용이 있다. 바로 내가 알고 있는 잡지식들의 뿌리와 출처를 명확하게 확인하는 일이다. 고사와 사자성어, 명언들의 출처를 고전을 공부하면서 분명히 알게 된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 말의 출처는 어디일까? 바로 ‘순자’다. 순자 텍스트는 권학(勸學)으로 시작되는데 권학편 첫 문장이 청출어람으로 시작된다.
‘군자가 말하기를 학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푸른 물감은 쪽풀에서 나왔지만 쪽풀보다 더 파랗고 얼음은 물로 이루어졌지만 물보다 더 차다.’
쪽풀에서 나온 물감이 쪽풀보다 푸른 것처럼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열심히 공부할 것을 권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인데, 청출어람이란 말은 다들 알지만 출처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순자가 한 말이다. 그런데 순자 하면 그저 성악설을 떠올린다. 인간 본성이 악하다고만 한 사람으로 말이다.
하지만 청출어람의 사례처럼 순자 텍스트에는 인간에 대한 긍정과 가능성에 대한 신뢰, 낙관의 말들이 많다. 누구든 노력하면 할 수 있다, 될 수 있다는 말이 거듭해서 나온다. 여기서 잠깐 다소 엉뚱해 보이는 질문을 해보자. 우리는 행복하니까 웃는 것일까? 웃으니까 행복한 것일까? 마음과 감정이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인지 거꾸로 행위가 마음과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묻고 싶은 것인데, 순자의 생각은 후자다. 행동이 마음과 감정을, 즉 몸가짐이 마음가짐을 만들어낸다는 게 순자의 생각이다.
맹자는 반대다. 성선설의 맹자는 마음이 우선이라고 했다. 맹자는 선한 마음이 있고 나서 선한 행동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순자는 반대로 특정한 행동이 특정한 감정과 마음을 만들어낸다고 봤다. 그래서 누구든 긍정적인 몸가짐을 반복하면 얼마든지 성인의 마음을 가진 이로 변화할 수 있다고 했다.
심리학에서는 대부분 맹자처럼 마음과 감정이 인간 행동을 유발한다고 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순자처럼 행동이 감정과 마음을 만들어낸다고 본 학자들이 있었다. 바로 윌리엄 제임스와 칼 랑게라는 심리학자다. 그들이 처음으로 행동이 마음과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기에 이 이론을 제임스-랑게이론이라고 하는데 당시의 상식적 인식과 어긋나 발표 이후 근 60년간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학계 밖에서는 성공적으로 부활했다. 성공학 전도사들에게 애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데일 카네기, 나폴레온 힐, 노먼 빈센트 필이 제임스와 랑게를 이론적 사부로 모셨다. 그들은 말했다. “성공한 사람 옆으로 가라.” “성공한 사람처럼 행동하면 성공한다.” 이들 성공학 전도사들이 펼친 논리의 바탕이 된 제임스-랑게 이론은 ‘자기지각이론’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착한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착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이타적 행위를 하면서 자신을 이타적인 사람으로 인식시키면 정말로 선하고 이타적인 인간이 된다는 이론으로 진화한 것이다. 순자의 생각도 제임스-랑게 이론, 자기지각이론과 같다. 군자처럼 행동하면 군자가 된다, 즉 도덕적 행위를 거듭하면 스스로를 도덕적 인간으로 인식하게 돼 자기도 모르게 도덕적 인간이 된다는 것이 순자의 생각이다.
“길거리의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될 수 있다.” “준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데 느린 말도 꾸준히 열흘을 걸어간다면 역시 천리에 도달할 수 있다.” “흙이 쌓여 가면 산이 되고 물이 쌓여 가면 바다가 되듯이 성인은 사람들이 노력을 쌓아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순자가 한 명언들인데 정말 고대 중국의 성공학 전도사라고나 할까? 성악설의 아이콘이지만 순자는 비관주의자가 아니다. 낙관주의자로서 인간의 성장과 성공을 자신했고 신뢰한 사람이다. 이 낙관주의자는 ‘절름발이 자라가 천리를 간다’는 말도 했다. 4자성어로 파별천리인데, 자 새해다. 코로나19로 다들 어렵고 힘겨워한다. 그래도 새해이니만큼 긍정의 기운을 갖고 시작해보자. 절름발이 자라도 천리를 가는데 우리가 못해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