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형(19)은 한·일월드컵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이 열리기 하루 전날 태어났다. 월드컵 4강 신화에 힘입어 국내엔 ‘축구 교육 붐’이 일었다. 그러나 김주형은 이듬해 중국으로 가야 했다. 해외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어머니, 골프 레슨을 했던 아버지를 따라 호주와 필리핀, 태국으로 옮겨 다녔다. 그가 ‘골프 노마드(유목민)’로 불리는 이유다.
눈물 젖은 빵의 맛을 아는 김주형은 지난해 세계가 주목하는 유망주로 성장했다. 미국 골프채널은 ‘새해에 골프 팬에게 익숙해질 선수 10명’ 중 하나로 김주형을 꼽았다. 최근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경기 용인의 한 연습장에서 만난 김주형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최근 초청 선수 자격 등으로 출전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대회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니 실력을 더 키워야 할 것 같다”고 몸을 낮췄다.
외신이 주목할 정도로 김주형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 ‘푸(Pooh)’를 연상하게 하는 푸근한 외모와 달리 클럽만 잡으면 돌변한다. 지난해까지 ‘무서운 10대’로 불렸던 그는 만 20세 생일을 맞기도 전에 프로 대회에서 5개의 트로피를 수확했다. 2019년 아시안투어와 아시안 2부투어에서 4승을 거뒀다. 지난해 7월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군산CC오픈에선 만 18세21일의 나이로 정상에 올라 투어 프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한때 세계랭킹 100위권에 들면서 PGA투어에도 도전장을 냈다.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에 출전한 뒤 PGA투어 3개 대회에 참가했다. PGA챔피언십에서 커트 탈락했지만 9∼10월엔 PGA투어 세이프웨이오픈, 코랄레스 푼타카나 리조트&클럽챔피언십, 더CJ컵에 잇달아 출전했다. 코랄레스 푼타카나 리조트&클럽챔피언십에서는 공동 33위를 기록했다. 김주형은 “많은 것을 배웠고 한국으로 돌아와 약점을 보완하려고 겨우내 노력했다”며 “스윙 완성도를 높였고 그린 주변 어프로치와 퍼트 연습에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김주형이 개인적으로 꼽는 지난해 가장 큰 수확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6·미국)를 직접 만난 것이다. PGA챔피언십에서 우즈와 만나 사진도 함께 찍었다. 호주에 살 때 우즈를 처음 본 뒤 그의 팬이 됐다. 김주형은 “우즈를 만났는데 풍기는 분위기에서도 힘이 느껴졌다”며 “필드 밖에선 여유 있게 동료들을 대했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즈의 집중력을 닮고 싶다”고 했다.
그의 또 다른 롤모델은 아시아 최초로 마스터스에서 준우승한 임성재(23)다. 김주형은 “1년에 30개 이상의 대회에 출전하고도 끄떡없는 (임)성재 형의 체력이 부럽다”고 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김주형은 PGA 콘페리(2부)투어 진출 전까지 먼데이퀄리파잉(예선전)과 초청 등을 통해 PGA투어에서 실전 감각을 다진다는 계획이다. 오는 22일부터 나흘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킨타에서 열리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다음달 26일 개최되는 푸에르토리코오픈 출전권을 확보한 상태다. 김주형은 “정말 많은 것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미국에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계속 성장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강조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