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굴뚝 산업'이던 자동차 업계가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맞아 변화에 나서고 있다. 수십 년간 유지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제조업을 벗어난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전자·IT 업계와의 협력에도 나서는 모양새다. 기아·GM, 수십 년 만의 사명·로고 교체…정체성 바꾼다18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기아자동차는 지난 15일 사명을 기아로 바꿨다. 1990년 기아자동차로 이름을 바꾼 후 31년 만이다. '기아'는 유지했지만 '자동차'는 사라졌다. 기아 양재 사옥 간판도 자동차를 의미하는 'Motors'가 사라진 'KIA'만 남았다.
기아는 기존 제조업 중심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전동화와 자율주행 기술을 바탕으로 친환경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한 중장기 전략 '플랜 S'도 마련했다. 플랜S는 전기차와 모빌리티, 목적기반차량(PBV)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지속 가능한 생산체제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형제 회사인 현대차도 사명 변경을 검토하는 상황이다. 다만, 기아와 같이 현대자동차에서 자동차를 빼면 현대그룹과 겹치기에 검토를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자동차 기업 제너럴모터스(GM)도 57년 만에 로고를 교체했다. 1938년 창사한 GM은 1964년부터 파란 바탕에 하얀 알파벳 대문자로 쓴 'GM' 로고를 사용해왔다. 중간에 음영효과를 넣는 등의 소소한 변화만 있었을 뿐이다.
GM의 로고 교체도 미래 친환경차 시장을 노린 포석이다. GM은 새 로고의 파란색 알파벳 소문자 'gm'이 탄소배출 제로의 청명한 하늘과 자사 전기차 플랫폼인 얼티엄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소문자 'm' 주변의 흰 공간은 전기 플러그를 상징한다고도 덧붙였다.
이탈리아-미국 합작 자동차 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 자동차 그룹 푸조시트로엥(PSA)은 '스텔란티스'로 합병했다. 이번 합병으로 피아트·마세라티·크라이슬러·지프·닷지·푸조·시트로엥·오펠·DS 등 14개 브랜드가 스텔란티스 산하로 모이게 됐다.
스텔란티스는 연구개발 비용 등 연간 60억 달러(약 6조6200억 원)를 절감하고, 경쟁력이 부족한 브랜드를 퇴출해 이러한 비용을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 분야에 투자할 전망이다. 모빌리티 '격변기'…친환경차만 살아남는다
완성차 업체가 이러한 변화에 나선 것은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의 부상으로 모빌리티 시장이 격변의 시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노르웨이에서는 전기차가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량을 넘어섰다. 산유국인 노르웨이는 환경보호를 위해 2025년부터 내연기관 승용차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다.
세계 각국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은 2035년 일반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금지한다. 일본도 2030년대 중반까지 순수 내연기관은 퇴출한다는 방침이다.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전기차 시장 육성에 나섰고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2050년 탄소 배출 제로를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는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점유율이 2025년 10%, 2030년 28%, 2040년 58%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확대되는 미래 모빌리티…20년 뒤엔 절반이 전기차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에 비해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해 안정적인 전력·통신 운용이 가능한 전기차의 확대는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전장·통신기술과의 활발한 접목으로 이어진다. 전기차 시대 경쟁력은 주행거리와 함께 자율주행 수준, 실내 적용된 편의사양 등으로 초점이 전환되는 것이다. 때문에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로 대표되는 미래 모빌리티가 내연기관 자동차와 같은 단순한 이동수단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선사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완성차 업계는 미래 모빌리티가 이동 자체는 자율주행에 맡기고 홀로 휴식을 즐기거나 지인들과 친목을 다지는 등의 공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해 전자·IT업계와의 협업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완성차 업계의 이러한 시각은 콘셉트카에서도 드러난다. 현대차가 LG전자와 함께 개발한 아이오닉 콘셉트 캐빈은 슈즈케어기, 의류케어기, 소형 냉장고, 커피머신 등의 일상 가전제품을 탑재해 자동차 실내를 '타는 곳'에서 '들어가는 곳'으로 바꿔놨다.
현대차의 스마트 모빌리티 생태계 소개 영상에 등장하는 PBV(목적기반차량)도 이동수단보다는 사실상 알아서 움직이는 방에 해당한다. 현대모비스의 콘셉트카 엠비전S는 운전자가 수동 운전을 원할 때는 앞 유리가 투명해지고, 자율주행을 선택했을 때는 대형 디스플레이로 변한다. 움직이는 방이 되는 자동차…무너지는 기술 경계
올해 온라인으로 개최된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1'에서도 이러한 기조가 이어졌다. 특히 미래 모빌리티에서 이동수단이 아닌 공간의 개념이 강화되며 업종 간 경계도 무너지기 시작한 모양새다.
CES 2021에서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새로운 인포테인먼트를 선보였다. 벤츠는 전기차 EQS에 적용할 MBUX 하이퍼스크린을 공개했다. LG디스플레이의 P-OLED로 제작된 이 디스플레이는 운전석부터 조수석까지 이어지는 크기로, 조수석에서도 다양한 시스템 조작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BMW도 차세대 운영체제 아이드라이브를 공개했다. 차량 주변의 위험 상황을 감지하고 선행하는 BMW 차량에게 이러한 경고를 받는 것이 특징이다. 양 사가 선보인 기술 모두 전통적인 자동차보다는 전자·통신 분야에 가깝다.
가전 업체들도 미래차 시장 기술을 대거 선보였다. 삼성전자의 자동차 부품·전기장비 자회사 하만은 미래차 실내를 구현한 '디지털 콕핏 2021'을 공개했다. 48인치 대형 디스플레이를 탑재하고 5G 기술을 사용해 차량 실내를 극장과 게임방, 영상 편집실 등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본 소니는 CES 20202에서 공개했던 자율주행차 비전S의 주행 영상을 CES 2021에서 공개했다. 비전S는 지난해 12월부터 오스트리아 공공도로에서 시험 주행을 진행하고 있다.
LG전자는 세계 3위의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한 데 이어 메르세데스-벤츠 인포테인먼트인 MBUX 개발사 스위스 룩소프트와도 합작법인 '알루토'를 설립키로 했다. 중국의 IT기업 바이두 역시 지리차와 합작법인 '바이두 자동차'를 설립하고 자율주행차 생산을 공언했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거대 IT 기업들이 완성차 시장 진입을 공언·암시하고 있다"며 "향후 자동차 산업은 △하드웨어(H/W) 플랫폼 제공 △소프트웨어(S/W) 플랫폼 제공 △생산·통합으로 3분할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한 회사가 외부 협력을 통해 자동차 차체와 프로그램을 모두 제작해 완성차를 선보이는 기존 산업 형태에서 전기차 파워트레인, 섀시, 바디 등을 전문적으로 설계·제공하는 산업과 전자·IT 기업이 비교우위에 있는 자율주행 기능과 서비스 구현을 위한 소프트웨어 생태계 산업이 태동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완성차 업계는 소프트웨어 역량 내재화를 추구하고 전자·IT 기업들은 완성차 업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자 할 것"이라며 "협력과 경쟁이 반복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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