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여성 부행장 시대 열렸지만…시중은행 임원은 '가뭄에 콩'

입력 2021-01-18 11:18
수정 2021-01-18 11:23

은행권에 '복수 여성 부행장 시대'가 열렸음에도 주요 은행들에선 여전히 여성 임원을 찾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여성 부행장이 한 명도 없는 곳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수적인
은행권 문화가 타 업권에 비해 '유리천장'을 공고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역대 여성 부행장 '제로'인 곳도

기업은행은 지난 14일 김은희 부행장을 신규 선임하면서 국내 은행 최초로 여성 부행장(부행장 직급 기준) 2인 체제를 열었다. 임찬희 자산운용그룹 부행장과 함께 역대 다섯 명이 여성 부행장(권선주 행장 포함)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은행 중 가장 많은 수치다.

다른 주요 은행들은 역대 여성 부행장(부행장보 포함)이 세명 이하였다. 신한은행은 신순철, 왕미화 전 부행장 이후 조경선 부행장이 현직으로 근무중이다. 국민은행은 구안숙, 신대옥, 박정림(현 KB증권 사장) 전 부행장 이후 대가 끊겼다. 하나은행은 역대 여성 부행장이 한 명도 없었다. 농협은행은 최초 여성 부행장이었던 장미경 전 부행장 이후 이수경 부행장이 새로 선임됐다. 국민, 우리, 하나은행은 현재 부행장 전원이 남성으로 구성된 셈이다.

지점장 직급에서도 여성 비중은 현저히 적었다. 가장 높은 은행이 16%대였고, 일부 은행은 '예민한 인사 자료'라며 제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다만 대부분의 은행에서 매년 여성 지점장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업계 얘기다.

◆보수적인 문화에 '유리 천장' 여전

은행권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가 여전히 여성이 고위직으로 가기 어렵게 하는 '유리 천장'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육아 휴직이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편(2~3년)이지만, 휴직후 돌아와서 비교적 한직의 업무를 맡는 경우도 많다는 전언이다.

다른 업권에 비해 보이지 않는 '성 역할'이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젊은 남성은 기업이나 여신, 여성은 개인 고객이나 수신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며 "프라이빗뱅커(PB)는 대부분 여성이, RM(릴레이션십 매니저)는 대부분 남성이 맡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임원으로 승진하더라도 대부분 핵심 파트를 맡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능력있는 여성 임원들이 더 많이 나오려면 은행마다 제도 개선과 문화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통해 출산 이후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연착륙'을 돕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한 대형은행의 여성 임원은 "여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려하고 가산점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본인 능력에 적합한 직급, 직무에서 일할 기회를 늘려주자는 것"이라며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지원이 늘어나면 제 능력을 발휘할 여성 인재들이 더욱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