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란·금사과…손 떨리는 밥상물가

입력 2021-01-17 17:07
수정 2021-01-18 01:51
‘1863만3000마리.’

지난해 11월 전북 정읍의 한 가금류농장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53일간 살처분한 닭과 오리 숫자다. 그 여파로 달걀 산지 가격은 전월 대비 40~50%, 닭고기 가격은 20% 이상 올랐다. 17일 서울의 대형마트에서 달걀 1판 가격은 6000원(최저가 기준)을 넘어섰다. 석 달 전 3000원대에서 두 배로 뛴 셈이다. 공급이 달려 서울 곳곳에서 달걀 매대에 빈 곳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설을 앞두고 장바구니 물가가 크게 오르자 물가안정 특별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장바구니 물가는 밥상에 오르는 품목을 가리지 않고 일제히 오름세를 타고 있다. AI 발생과 한파, 국제 식량 가격 상승 등 국내외 공급 측면에서 가격 상승 요인이 생긴 데다 설 명절 특수까지 겹치면서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영향은 AI다. 지난해 11월 처음 발생한 AI는 지금까지 전국에서 65건 발생했다. 방역당국이 ‘3㎞ 내 가금류농가 살처분 조치’ 등 역대 가장 강력한 방역 조치를 시행하면서 확진 농가의 약 6배에 달하는 327개 농가의 닭과 오리 등이 땅에 묻혔다. 달걀을 낳는 닭을 기르는 산란계 농가가 이번 고병원성 AI로 가장 피해가 크다. 120개 이상의 산란계 농가에서 843만 마리의 닭이 살처분됐다. 국내 전체 산란계의 약 10%에 달하는 수치다.

농산물 가격도 한파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국내 거래액 기준 상위 22개 농산물의 도매거래 가격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팜에어·한경 한국농산물가격지수(KAPI: Korea Agricultural product Price Index)’는 지난 3개월 새 최고인 182를 기록했다. 1년 전(152)과 비교해 16%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세계 식량 가격까지 오름세여서 당분간 밥상 물가 상승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선물시장에선 최근 수개월간 옥수수 밀 콩 등 주요 곡류가 2013~2014년 이후 최고가를 매달 경신하고 있다. "라면·빵·과자 가격 인상은 시간문제"전문가들은 축산물 가격상승세가 상반기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AI로 인한 살처분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재입식이 시작되고 출하까지 60일 이상 걸리기 때문에 올 상반기 말에나 계란과 닭고기 가격이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산물 가격도 마찬가지다. 이상 기후로 인한 작년 여름 시설 파괴와 올겨울 한파 영향이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가격을 집중 관리하는 5대 조미 채소, 즉 배추(35%), 무(34%), 고추(90%), 마늘(9%), 양파(34%) 등의 가격이 전월 대비 크게 오른 데다 한파로 공급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식품 소비 패턴의 변화를 분석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 외식과 단체급식에서 소비하는 식자재 거래량은 40~50% 줄어든 데 비해 가정 소비는 크게 늘었다. 올 들어 22개 농산물 도매 거래량은 평균 28% 감소했다. 반면 온라인 식품 시장은 2019년 26조원에서 지난해 40조원으로 50% 이상 급증했다. 외식과 급식에서의 구매는 대량구매, 정량구매가 이뤄지지만 가정 내 식품 구매는 실수요보다 더 많은 양을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세계적 위기라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며 주요 식품의 가정 내 소비가 증가해 소매 가격을 끌어올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국제 곡물 가격 불안으로 라면, 빵, 과자 등의 주요 가공식품 물가도 올해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보라/이지훈/선한결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