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투자자가 복합 기업 투자를 꺼린다. 투자를 위해 다수의 사업 부문을 모두 분석해야 한다는 점을 부담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사업 분야별로 향방이 엇갈린 상태라면 투자 판단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는 사업 분야만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ABB와 같은 기업에는 충분한 프리미엄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ABB는 1891년 설립돼 현재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전기장비 기업 중 하나다.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다. 미국 증시를 통해 거래할 수 있어 국내 개인 투자자들도 쉽게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이다. 미국에 상장돼 있지만, 주가 흐름은 유럽 증시 분위기에 더 좌우되므로 해외주식 투자자에게는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ABB는 실적 측면에서도 미국·유럽·중국 매출 규모가 비슷해 지역별 분산투자 효과가 있다.
ABB의 사업은 전기화 부문, 자동화 부문, 전기동력장비 부문, 그리고 로보틱스 부문 등 네 개로 나뉜다. 모두 시대적 변화를 맞고 있는 분야다. ABB의 제품은 전통적인 플랜트 전기장비부터, 전기철도 시설 및 전기차 인프라까지 다양하다. 전기차 레이싱 대회인 ‘포뮬라(Formula)-E’를 공식 후원하는 등 시대 변화에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ABB의 전기변압기와 차단기, 전기모터는 과거부터 업계에서 명품으로 인정받아 왔으며, 여기에 세계적 수준의 자동화 엔지니어링 능력이 더해져 높은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화 설비 시장은 최근 3년간 연평균 7.6% 성장했고, 제조업의 트렌드가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및 맞춤생산으로 변화했다.
중국과 한국 등 다수 제조업 강국의 임금이 상승했고,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력이 밀집된 상태로 생산라인을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했다. 이는 기업들의 자동화 욕구가 커지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런 변화는 ABB의 자동화 제품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특히 ABB의 산업용 로봇사업은 별도 사업 부문으로 분리될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ABB의 로봇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리고 있으며, 특히 중국에서는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ABB는 주주가치 제고 측면에서도 국내 기업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ABB는 지난해 발전설비 부문을 매각했으며, 매각대금 중 10%를 올해까지 주식 매입 및 소각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1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주주 환원을 위해 단기간에 집행되는 경우는 해외에서도 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