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감염병이 온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시대.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특히 많은 인구가 밀집한 도시는 일상이 멈춰버린 듯한 가운데서도 펄떡이며 살아 숨쉰다. 그 도시를 채우고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또, 사랑이다. 효율을 추구하는 도시는 자칫 삭막하고 차갑기 십상이지만 사랑이 있기에 살 만한 곳, 숨쉴 만한 곳이 된다. 지금 이 시대의 도시와 사랑에 주목한 전시가 열린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의 한경갤러리가 선화랑과 공동 기획한 신년특별전 ‘시티앤러브(CITY & LOVE)’다. 김성호, 송지연, 이길우, 김경민, 문형태 등 작가 11인의 작품 28점을 선보인다. 일상의 공간, 도시깊은 어둠이 조금씩 깨어나는 새벽. 어스름하게 푸른빛을 띠는 하늘과 도시 안에서 터져나오는 빛은 또다시 하루를 준비하는 생명력이다. 김성호(59)는 도시가 막 활동을 시작하려는 새벽녘의 응축된 에너지를 잡아냈다. 그는 파란색의 대가다. 그의 파랑은 어두운 밤이었다가, 깊은 바다였다가, 서서히 깨어나는 아침이기도 하다. 가로 2m짜리 대작 ‘새벽-남산’을 비롯해 ‘새벽-용담해안도로’ ‘새벽-충무로’ ‘새벽’은 도시가 품고 있는 뜨거운 생명력을 보여준다. 특히 작품에 따라 다양한 기법과 컬러로 변주해낸 빛은 그가 왜 ‘빛을 그리는 작가’라는 별칭을 얻었는지 보여준다.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한규남(76)이 수많은 점과 선, 강렬한 터치로 표현한 ‘이태원 빌리지’ ‘한남동 빌리지’도 눈길을 끈다. 가까이에서는 추상적인 점의 연속이지만 떨어져서 보면 도시의 풍경이 담겨 있다.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보이는 아름다움인 셈이다.
두텁고 거친 질감이 눈길을 끄는 송지연(40)의 ‘먼 곳에서 바라보다’는 도시 안에서 자아를 탐구하는 작가의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는 자신이 바라본 풍경을 담은 뒤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꿀 때마다 새 이미지를 덧입혔다. 이렇게 네 번을 거듭하며 완성한 작품은 풍경이되 작가의 시선이 녹아 있는 추상의 세계다. 김명식(72)의 ‘이스트사이드’ 연작, ‘향불 화가’ 이길우(51)의 ‘살구골 아파트 804호 03’에서는 도시의 풍경을 읽어내는 다양한 시선과 기법을 느낄 수 있다. 사랑, 일상을 살아가는 힘
바구니에 소복히 담긴 진달래꽃 더미. 꽃잎 하나하나에는 소박하지만 싱싱한 생명력이 담겨 있다. 작가가 13년에 걸쳐 완성한 가장 한국적인 분홍빛이다. 바구니도 미처 가리지 못하고 틈새로 삐져나오는 분홍빛, 그리고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으로 흘러내린 꽃잎들은 가진 것을 다 내어주고도 더 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한다. 김정수(66)의 ‘진달래-축복’ 연작이다.
오늘날 뜨거운 인기작가 중 한 명인 문형태(45)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일상을 스쳐가는 다양한 감정을 특유의 색감과 동화적인 감수성으로 표현해 사랑받는 작가다. 그의 ‘원한다면 어디든지’ ‘태거(Tagger·술래)’는 단순하고 장난스럽게 표현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익살스러우면서도 마냥 밝지만은 않은 잔혹동화를 떠올리게 한다.
일상 속 행복을 조각하는 김경민(49)의 조각 작품 ‘내 사랑 봉봉’ ‘웰컴(WELCOME)’은 보는 것만으로 미소가 지어진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아빠의 어깨에 목말을 탄 채 양팔을 한껏 치켜들고 신나게 즐기는 아이, 뒤에서 이들을 잡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엄마. 지친 일상을 이겨내게 하는 것은 결국 가족이 주는 행복과 사랑일 것이다.
자작나무를 자르고 덧대 팝아트적 감성을 표현한 박현웅(52), 화려한 색감으로 자연의 찬란함을 그린 전명자(79), 꽃과 연인, 오르골 등으로 동화적 세계를 표현한 정일(63)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다음달 19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