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이 직장인 신용대출 한도를 대폭 줄이기로 한 것은 “대출을 죄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새해에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고소득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를 철저히 관리해달라는 주문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은행의 ‘마이너스 통장(한도대출)’ 사용액은 새해 들어 급증하는 추세다. 그러나 과도한 대출 규제책이 오히려 실수요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쓰고 보자’ 식 대출을 받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5대 은행 ‘마통’ 새해 사용 급증
15일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농협은행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5대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잔액(사용액)은 47조5131억원을 기록했다. 새해 들어 6353억원 늘었다. 이는 고소득자 대출 규제 발표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 대출 움직임이 극대화된 지난해 11월 잔액(47조5267억원)에 버금가는 수치다.
마이너스통장 사용액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새해 들어 지수 3000시대가 열리면서 개인들의 투자 열풍이 달아오르고 있는 게 주된 배경이다. 연 2~3%대의 마이너스통장 이자를 내더라도 주식에서 수익을 올리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직장인이 많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새해 들어 대출 규제가 강화될 것이란 얘기가 나오면서 마이너스 통장 사용을 늘리는 고객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은행마다 마이너스통장 문턱을 급격히 높이고 있다. 대출 계약 연장 시 한도의 50%를 사용하지 않으면 신규 한도를 대폭 줄이는 곳이 많아졌다. 또 우대금리를 축소해 기존보다 금리가 올라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출 조건이 나빠지기 전에 ‘우선 쓰고 보자’는 움직임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돈이 필요하지 않지만 미리 자금을 확보해 놓으려는 움직임이다. 30대 직장인 B씨는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8000만원까지 뚫고 3000만원밖에 사용을 안 했는데, 연장 시 감액될 수 있다고 해서 3000만원을 끌어다 주식 계좌로 옮겼다”며 “전액을 다 주식 투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급하게 필요할 때를 대비해 미리 현금을 챙겨둔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 연장 직전에 마이너스통장에서 자금을 빼 다른 은행 계좌로 ‘파킹’(주차)하듯 옮겨놓는 경우도 있다는 전언이다. 한도의 절반 이상을 소진해 연장 시 한도를 지키기 위해서다. 대출 규제할수록 “가수요 폭증” 우려신한은행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우량 신용대출의 한도를 조이면서 은행권 전반에 이 같은 움직임이 불붙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 실무자들을 모은 자리에서 “고소득자들이 빚을 내 투자하는 등의 행위를 철저히 모니터링해달라”고 주문했다.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뿐 아니라 연봉이 높은 대기업 직장인까지 ‘타깃’을 넓힌 것이다. 이에 따라 다른 은행들도 당분간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 상품의 금리를 내리거나 한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대출 문턱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이어질수록 ‘영끌’ 대출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크다. 실수요자가 아닌 소비자까지 대출을 미리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5대 은행 마이너스통장 사용액은 44조473억원 정도였다. 전년 동기 대비 5.5%(3500억원) 늘어난 수준이다. 그런데 고소득자에 대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 전문직 대출 한도 축소 대책이 발표된 11월부터 마이너스 대출 수요가 폭증했다. 9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두 달 새 5대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사용액은 3조4794억원이 늘었다. 직전 1년치 증가액의 10배에 달하는 수치다.
은행권 관계자는 “연말에는 은행마다 대출 관리 목표 맞추기에 나서면서 대출 증가액이 잠시 주춤했지만, 새해부터 다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새 규제가 발표될 때마다 당장 필요가 없는데도 대출받으려는 소비자가 한꺼번에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정소람/김대훈 기자 ram@hankyung.com